지하 정원
홍준성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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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늙은 식물학자 얀코가 일곱 살때인 1092년을 시작으로 병을 앓으면서 죽음을 기다리기까지 그녀가 기록한 천 장의 메모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적한다.    



무차별적인 학살이 벌어졌다. 빈민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구는가? 마치 인구수를 줄여서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처럼, 여느 때처럼 늘 있어왔던 흔하디흔한 식량 폭동일 뿐인데. 그날의 진압은 확실히 이상했다. 빈민들 대다수는 곡물관리청을 점거하고서 최후의 저항을 준비 중이었는데, 정작 계엄군이 향한 곳은 서쪽 골목에 있는 로벨토 가街였다. 똬리나무가 발견됐던 지하철 공사 현장. 그리고 수 년이 흐르는 동안  똬리나무와 관련된 사람들은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면 죽음을 맞았다.  








프롤로그부터 무척 흥미진진한데, 이 소설의 재밌는 점은 시간적 배경이다. '기적이 사라진 해'로부터 약 천 년이 지난 뒤다. 그런데 기적이 사라진 날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배경이 11~12세기 무렵으로 나타나지만, 현실에서 봤을 때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인지, 미래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즉 시.공간적 배경이 모두 허구라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전작인 <카르마 폴리스>의 대홍수를 기점으로 천 년여가 흐른 뒤의 비뫼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아님 말고). <카르마 폴리스>의 고아 소년 '42' 역시 몬세라토 수도원 부속 고아원 출신이다. 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만의 논리와 방식은 작금의 현실을 꼬집고 있음은 아닌지.  



하인학교에 들어간 얀코가 애정을 갈구하며 칭찬받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다른 고아 하인후보생들과는 달리 우등과 낙제 사이의 회색지대에 머물며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으로 행운을 거머 쥔 죄책감을 달래는 모습은 흡사 우리의 모습같다. 적당한 위선과 위악 사이에서 누구나 그렇다는 것을 핑계 삼으며 타인의 고통에 슬그머니 한 발 물러나는 나의 모습이기도 하고.   


그러한 얀코를 조건없이 지켜주는 두 사람이 있다. 고아원 친구 난쟁이 참토, 그리고 연인 비나드. 고아원에서부터 남방한계선까지 얀코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나 헌신적으로 얀코의 보호막이 되어 주었던 참토와 동료들의 참혹한 고통과 죽음 앞에서도 연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던 비나드를 통해 얀코는 생각했다. 억울하고 비참하기만 했다고 여겼던 자신은 과분한 삶을 산 것이라고.  


얀코가 그토록 지하의 똬리나무에 집착했던 이유는 복수였다. 복수가 아니라면 살 명분이 없었고, 어쩌면 살기 위해서 명분을 만들어야만 했을테니까. 얀코는 수시로 자문한다. "나는 왜 살려고 하는가." 



사랑과 비극, 분노와 복수, 고독과 회한, 기억과 망각, 후회와 미련, 연민과 우정, 삶과 죽음에 대해 통찰하면서 우리 사회가 여전히 안고 있는 수많은 부조리와 모순들을 짚어낸다. 산업재해, 우생학, 농업의 붕괴와 그에 대한 여파, 국제 경제의 모순, 공기업의 부패, 빈민 구역의 건물 붕괴 및 화재 사고, 시대의 변화에 따른 산업의 흥망성쇠, 이슈를 이슈로 덮는 정치 프레임과 언론 조작, 여론몰이 등 그야말로 정치, 경제, 산업 등 전반적 현대사를 아우르며 한국뿐 아니라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들을 절묘하게 엮어내면서 우리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얀코는 젊은 시절 문득, 자신이 이 저주받은 도시에서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필사적으로 병마와 죽음에 저항하면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는, 노쇠한 얀코가 남기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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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레 미제라블, 고골의 페테르부르크가 존 르카레의 형식을 띠며 철학적 사유를 하는 소설,이라고 한다면 이 소설의 그림이 그려지려나? 구성도 얄미울 정도로 극적이다. 매 장章이 연이어 서술되지 않다보니 대충 읽을 수가 없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진실을 향해 달려간다. 그런데 마지막, 비나드의 편지는 너무나 부드럽고 사랑스러우며 희망적이라서 더 슬프다. 책을 읽는 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엇갈리고 작가의 철학적 사유에 나의 생각을 실어보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화룡정점은 얀코에게 쓴 비나드의 편지다. 


얀코와 함께 떠날 수 있었던 비나드. 그랬다면 두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비나드의 편지는 왜이렇게 애달픈지, 이 편지를 읽었을 얀코는 어떤 심경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기에 마음이 아프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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