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샤우트
P. 젤리 클라크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짐 크로법과 금주령이 한창이던 1920년대를 배경으로 실제 존재했던 큐 클럭스 클랜(KKK단)에 대항하는 괴물 사냥꾼인 세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판타지 소설이다. 


소설은 실제했던 것들을 소설에 그대로 녹여내고 있는데 KKK단 외에 대표적인 인종주의의 다큐멘터리 영화 <국가의 탄생>도 등장한다. 소설에서는 영화 내용 중 백인 처녀를 흑인에게서 구출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살하는 장면을 서술하면서 클랜이 진정한 영웅이며 유색인은 괴물이라고 믿게 됐다는 데에 더 나아가 인종주의는 물론 여성 혐오까지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에는 샤우터를 인터뷰한 내용 일부를 주석으로 시작하는 장章이 있다. 3장 주석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가장 지독한 시절에도 우리는 즐길 줄 알았어. 안 그러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행복하기 때문에 노래와 춤과 웃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견뎌내는 한 방편으로서의 예술에 대해 생각해 본 짦은 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전통 예술과 또 다른 저항 예술이 떠올라져 다른 몇 권의 책들을 뒤적여 봤다. 







 
마리즈는 어린시절, 느닷없이 들이닥친 클랜과 쿠 클럭스에 의해 부모님과 오빠까지 모두 몰살당했고, 가족의 시체는 헛간 대들보에 매달렸다. 오빠가 마리즈를 해치 속에 밀어 넣어 그녀만 겨우 살아남았다. 마리즈에게 남은 건 상실에 대한 슬픔,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부끄러움, 너무나 큰 분노였다.  


도살자 클라이드가 마리즈에게 요구하는 것은 순도 100%의 증오다. 학대와 폭력을 당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지독하게 고통당한 민족이 갖는 너무나 확실하고 강한 증오. 클라이드는 마리즈야말로 최고의 증오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위대한 키클롭스는 마리즈에게 제안한다. 복수할 힘, 동족의 생사를 좌우하고 그들을 지킬 힘과 권력을 줄테니 너의 증오를 달라고. 마리즈는 갈등한다. 유색인들이 이런 제안을 받아 본 적이 있을까? 유색인에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언제 있었을까? 유색인은 내내 인간의 꼴을 한 괴물(백인)의 손에 고통당하고 죽어나가지 않았는가. 이 계약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유색인만을 경멸하고 괴롭힌 이 세상을 위해 다른 인종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을까? 세상이 유색인을 구하려고 무엇 하나 해준 것 없는데, 어째서 유색인인 마리즈는 그 세상을 구해야 할까?  


생각해 보면 이러한 마리즈의 고민은 우리 주변에서 크고 작은 모습으로 늘 존재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차별과 불공정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러한 부조리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마리즈가 적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얻는 것은 투쟁을 계속할 기회, 언젠가는 승리를 보리라는 희망, 그것뿐이다. 권력을 가진 꼭두각시로 살 것인가, 저항하는 약자로 남을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키워드는 증오(의 근원)이다. 소설에서는 증오가 누군가에게는 감정의 하나이지만, 증오를 먹고 사는 클랜에게는 그 자체가 힘이라고 말했다. 마리즈가 대항해 싸우는 괴물은 백인우월주의자, 인종주의자, 학살자다. 그런데 21세기에는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괴물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사회 곳곳에 숨어 있다. 악은 늘 형태를 달리해 이어간다. 인종주의를 비롯한 혐오, 증오, 폭력, 학살을 자양분 삼아서. 


마리즈는 키클롭스를 대면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마리즈와 그녀의 동족이 갖는 것은 슬픔, 상실, 응당한 분노, 정의를 부르는 외침이지 증오가 아니었음을. 마리즈가 저항을 포기하지 않듯이 우리 역시 현실의 쿠 클럭스 클랜들로부터 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가독성이 좋다. 무엇보다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들을 허구와 잘 버무려 놓아서 1920년대 미국 역사를 잘 알지 못해도 읽는데 무리가 없으며 민담과 신화, 그리고 판타지 요소까지 더해져 상당히 흥미롭다.  


종반에 클라이드의 제안이 그야말로 통쾌한 반전이다.
마리즈가 키클롭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상상만으로도 재미진 일이 벌어졌겠지.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