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 일기 - 시간 죽이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2
송승언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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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문에서 그가 '경험해온 여러 작품에 관해 제멋대로 쓴 감상문'이라고 썼다. 나 역시 서평이라기보다는 이 책을 읽은 감상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어쩜 이럴수가... 270쪽 분량의 책을 읽는 동안 186쪽까지 아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 아는 게임이라고는 테트리스가 전부고, 중국 드라마는 한 편도 본 적이 없으며 웹툰도 마찬가지, 거기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10년 안쪽에 극장에서 개봉한 작품들 외에는 문외한이다보니 "어쩔..."하며 읽었는데(그래도 드래곤볼은 학창시절 만화책으로 몇 권 읽었더랬다), 의외(?)로 재.밌.다. 








아무튼 신세계를 만났다. 일단 게임에 관련한 부분을 읽는 내내 "와..." 혹은 "헉!"을 연발하며 거의 입을 벌리고 읽은 것 같다. 위에 썼듯 '게임=오락실' 정도로 인식하고 있던 나로서는 게임 자체에 대한 얘기에서 크게 공감하지 못했으나 정말 많은 것들을 알게 됐다. 생존형 전략 시뮬레이션, RPG 등을 처음 접했고, 영화도 아닌 게임을 이렇게까지 조밀한 스토리로 구성한다는 것, 개인이 후원자를 받아 게임을 개발한다는 것, 게임 동영상을 관련 사이트에 중계하고 기금을 마련해 불우 어린이들을 돕는 후원 기금 행사도 한다는 것 등 모두 처음 알게 된 사실들이다. 덕후들 사이에서는 특정 개발자를 선호한다는 점이 조금 낯설었는데, 생각해보면 다독을 하는 독자들 중에도 저마다 선호하는 작가가 있는 것과 비슷한 일일터다. 


게임 관련한 부분을 읽다보니 내가 그동안 너무 편협한 사고로 게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아바타'가 정말 일상화 되는 날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왠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게임이 현실을 모방하고, 종종 모방을 넘어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하고, 대안 현실로 기능하기도 하는 시대이니 어떤 선(경계)을 그어야할 필요성에 대한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종류별 게임의 성격과 소비자가 호구가 되는 게임 시장의 구조적 문제, 그리고 게임이 플레이어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들을 부담없이 가볍게 분석하는데,무겁게 썼다면 나같은 사람은 읽는 데 더 난감했을 것 같았다(가벼워서 좋았다는).



게임에 대한 글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애니메이션, 웹툰, 영화 등 다양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대부분 대중이 쉽게 접하지 않는 작품들이다. 지극히 사적인 견해를 지인들과 얘기하듯 써내려간 글 사이사이에 게임을 비롯한 여러 매체나 콘텐츠들이 전달하는 여성 차별, 반전反戰, 성폭력, 동물 학대, 고어물에서 찾는 윤리, 약물 도핑과 이에 대한 정치적 활용, SNS 폐해, 환경 오염 등을 언급한다.  


이 책을 재밌게 다 읽었으나 사실 책에서 언급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및 영화를 경험해볼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누군가의 경험을 즐겁게 들을(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새삼 느꼈다. 그저 나 혼자 조금 웃겼던 건 저자와 나의 취향은 전혀 다른데, 저자가 스스로 덕후가 될 수 없다면서 얘기한 그의 성향이 많은 부분에서 비슷해 공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나 역시 내가 덕후가 될 만한 사람이 못된다는 걸 잘 알고 있고.   


저자는 자신이 절대 오타쿠가 아니라고 누차 강조하는데, '이 정도인데 오타쿠가 아니라고?' 하다가도 문득 궁금한 건 못 참아 검색 엔진을 돌리며 지인들의 모임에서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간헐적 덕후 기질을 보이는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시간을 죽이는 것으로써 살아냈던 시간들의 여정이라고 썼다. 무엇이든 많은 것들을 사랑하라고, 그 사랑한 것들이 각자 자신의 총합이라고 말하는 그야말로 진정한 오타쿠가 아닐런지.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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