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프, 바이 더 시 - 조이스 캐럴 오츠의 4가지 고딕 서스펜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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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스 형식의 중단편 고딕 소설 네 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을 비롯해 심리, 오컬트, 초자연적 현상 등 장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탁월함이 잘 드러나는 소설들이다.  








[카디프, 바이 더 시]


전화 한 통화로 정해진 인생 행로에서 사잇길로 들어서버린 클레어. 느닷없이 나타난 생부모의 친척들과 뜬금 없는 유산 상속. 혈연은 무엇일까. 세 살 이후 27년 동안 모르고 살았던 부모의 복수에 제 인생을 던져넣을 수 있는 것이 혈연일까? 스스로 입양아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던 클레어가 맞닥뜨린 생부모의 진실에 이토록 강하게 이입하는 것에는, 혈연보다는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착한 아이로 살면서 한 걸음도 삐긋하지 않기 위해 모든 면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던 긴장감과 도시 곳곳을 부유하듯 떠돌았던 헛헛함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는, 자신은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는 기쁨에 들뜬 클레어를 보면서 그녀가 그동안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고립과 단절의 공포가 전해진다. 그녀는 그 낯선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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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먀오 다오]


학교폭력과 가정 내 성폭력에서 미아를 보호한 사람은 어른이 아닌 고작 열네 살의 어린 소녀, 본인이다. 소녀의 복수가 통쾌함을 안기는 동시에 어른의 부재가 씁쓸함으로 깊게 남을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가 소설 속 사건들이 현실에서 너무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 또한 소설처럼 '어른'들은 여전히 그들에게 부재 중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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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처럼 : 1972]


앨리스는 젊은 강사가 대화를 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고, 사이먼은 앨리스가 방으로 순순히 들어오자 다음 순서를 용인한다고 여겼다. 앨리스는 혼란스러웠으나 한편으로는 사이먼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여겼지만, 사이먼에게는 늘 있어왔던 그냥 그런 일상적인 관계였을 뿐이다. 앨리스는 말한다. 성폭행은 아니었다고. 앨리스는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건 아닌지. 두 사람의 생각 차이가 진부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아무 준비도 없이 어떨결에 치른 하룻밤의 대가로 생긴 임신은 여성에게 사형선고와 같다. 임신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은 온전히 앨리스만의 몫이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지만, 이를 포함한 임신 중절에 대한 권리는 남성에게 주어진다.   



[살아남은 아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가부장제가 여성과 어린아이에게 가해지는 속박과 억압. 그리고 '사생활'이라는 명분으로 외부의 개입이 거의 불가능한 가정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현재, 여성이 할 수 있는 선택의 한계를, 소설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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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제도와 관습으로 인한 여성의 고립과 그에 따른 공포, 그리고 복수를 네 편의 소설을 통해 이야기한다.  


성폭력 사건에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사람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 게 지금의 현실이다. 성폭력 피해자는 내가 '나'가 아니었다면 성폭행 대상이 되지 않았을거라는 의심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자신을 수치스러워하고, 사건 당시 강력히 저항하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네 편의 소설에서 심리와 환상, 초자연적 현상을 들어 현실을 비틀면서 독자가 가져야하는 공포는, 소설이 아닌 약자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이 가해지고 자신의 삶이 타인에 의해 붕괴되는 현실에 있음을 일갈한다.  


의문을 남기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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