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 한 번의 사건으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의도치 않게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된 루이즈, 전쟁터에서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인간의 민낯과 인간이 갖는 다양한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한 가브리엘(과 라울과 페르낭), 그리고 사기꾼 데지레. 소설은 이들의 관점을 교차하며 서술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1940년 5월 독일의 벨기에 침공 시점을 본격적인 소설의 시작으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소설은 전선이 아닌 프랑스 내부 상황에 집중한다. 파리 탈출, 탈영병, 정치 및 사상범, 피난민, 부족한 보급품과 굶주림, 그리고 세대를 이어 전쟁 중에도 계속되는 삶과 그 안의 인간군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이 중반부에 이르도록 가장 궁금한 점은 도대체 의사 티리옹은 루이즈에게 왜 그런 부탁을 했으며, 굳이 알몸의 그녀 앞에서 자살한 것일까? 그리고 그의 아내는 검사로부터 끈질기게 고소하라는 제안을 물리치고, 그것도 모자라 남편이 루이즈에게 지불하기로 약속했다는 거금 1만 프랑을 왜 돌려받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심지어 호텔의 손해 배상까지 모두 해결해 주었다. 도대체 왜? 이 의문에 그토록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있을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나.  


ㅡ 


이 소설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들의 공간적 배경과 입장 차이와 이에 대한 구성 방식이다. 소설의 중후반에 이를 때까지 그들의 관계를 전혀 짐작할 수 없고, 그들은 서로 만난 적도 없는 사이다. 루이즈는 파리 도심의 민간인, 가브리엘과 라울은 전쟁터의 병사, 데지레는 보도를 담당하는 공보국 직원에 위치에서 시작한다. 
(소설 막바지에 그들이 만나는 장소는 참 의미심장하다.) 


시간이 흐르고 전쟁이 긴박해지면서 그들은 각각의 공간에서 때로는 교차하고 때로는 엇갈리며 공간을 이동하고, 동시에 각자가 처한 입장을 대변한다. 특히 전쟁터 한복판에 있는 세 인물(라울, 가브리엘, 페르낭)의 관점과 데지레의 관점을 교차하면서 보여주는 장면은, 실제 전선의 상황과 프랑스 정부가 언론 및 시민에게 보도하는 내용이 상이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정부의 거짓 선전과 대국민 가스라이팅을 절묘하게 비판하고 있다.   


즉 독일의 나치뿐 아니라 역사 안에서 어느 나라에서든 있어 왔던, 그리고 현재에도 애용되고 있는 가짜 뉴스와 국민을 상대로 한 언론 사기극에 대해 일갈하고, 더불어 지금까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는 이러한 행태를 꼬집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하여 떠돌이 사기꾼에 불과한 데지레가 재미삼아 벌이는 사기 행각이 오히려 정부보다 더 가까이에서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고 씁쓸하다. 또한 아비규환의 지옥같은 세상에서 사기꾼 데지레가 만들어낸 세상은 천국과 다름하지 않다. 전쟁으로 국토는 초토화되고 대다수 국민들을 거지로 만들었는데, 정작 정부도 신도 아닌, 진실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기꾼이 만들어놓은 천국이라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ㅡ 


데지레는 대중이 듣고 싶은 말만 했고, 권세가들이 믿고 싶은 말만 했기에 콩티낭탈 호텔에서 그의 인기와 신뢰는 하늘을 찌를듯 했다. 나눔과 기부를 빌미로 인근 농가의 식료품과 가축들을 갈취하다시피했고, 유려한 말솜씨로 군 의료 트럭을 피난민들을 위해 끌어왔다. 알리스와 세실 수녀는 그가 진짜 사제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고통받는 이들이 필요한 것을 가져왔다. 그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데지레가 가는 곳은 당시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국민의 눈을 가린 정부, 외국인과 이방인에 대한 혐오의 현장에 사기꾼 데지레가 활개를 친다. 그런데 독자는 사기꾼인 데지레를 비난할 수 없다. 



티리옹, 이토록 무력하고 비겁한 사람이라니. 그로인해 몇 사람의 인생이 망가졌는지. 책장을 넘기고 인물들의 서사가 이어질수록 그에 대한 원망이 깊어졌더랬다. 20년을 넘게 남몰래 지켜본 순애보에도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더라.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인물은 레스토랑 주인 '쥘'이었다. 별거 아니라는 듯 무심한듯 다정한듯 루이즈를 챙기는 쥘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 곁에 쥘 아저씨가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고통에서 시작된 루이즈의 여정은 우울증을 앓았던 어머니에 대한 이해와 결핍된 자존감을 되찾은 치유의 과정이 됐다. 루이즈가 걸었던 그 길이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우리도 진정한 아름다움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