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약국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1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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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2
도시엔 사라져가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싶다. 


작가는 춘천에서 자라 현재 원주에서 약국을 운영 중이다. 나는 춘천은 비교적 구석구석 다녀봤지만, 원주는 백운산과 치악산을 가본 것이 전부다. 그래서 작가가 책에서 춘천 가는 길의 휴게소를 언급했을 때 '음... 가평휴게소쯤이겠군.', 또는 명동 거리와 소양호라는 단어를 읽었을 때 고개를 주억거렸다면, 약국에서 바라본 원주 시내의 풍경은 도무지 그려지지가 않았다. 원주 시내를 가 볼 핑계가 생긴 셈이다. 








버섯, 새, 고래, 거북, 문어, 나무, 외국인 이주민, 그리고 그들과 주류로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야생 동물이 인간 세상에 들어오기까지 혹은 혐오동물로 전락하기까지, 그리고 동물실험을 비롯한 동물학대, 이주 노동자, 군 의문사, 존엄사, 노화, 자연의 순리와 생명의 순환, 생동성, 그리고 각각의 생명체들이 갖는 생의 경이로움 등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잠시 머물다 흘러갔다. 


내가 줄줄이 늘어놓은 단어들만 보면 상당히 심각한 글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제법 묵직하고 심오한 현상들이 우리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약국을 드나드는 이웃들에게서, 극지방뿐 아니라 동네마다 하나쯤은 있는 뒷산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친구와 나누듯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작가가 발췌한 소설과 시와 옛 문헌의 일부들, 그리고 소소하지만 늘 바쁜 일상에서 잠시 갖는 철학적 사유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어려운 철학이 아닌 우리의 삶 속, 찰라의 순간에 떠오르는 그 수많은 생각들이야말로 철학이 아니랴. 


지난 주말에 엄마와 밥을 먹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엄마 친구들의 안부를 물었더랬다. 북가좌동(책에서 이 동네 이름이 나와 불현듯 떠오른 아줌마)에서 경영식집을 하던 친구분은? "걔 죽은 지가 언젠데." 절친 숙이 아줌마는? "절교했다." 노인들이 무슨 절교냐고 했더니 절교할 때는 노인이 아니었다나... .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나는 그렇게 나도 모르는 새에 잠깐 알았다가 잊어버린 이들을 하나둘씩 떠올렸다.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싶다는 작가.
에세이를 다 읽은 후 이전에 읽었던 그의 몇몇 소설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작가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 소리없이 사라져 간 이야기들을 쓴 거였구나... 라는 것을.




사족
마토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신시아 라일런트의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림책 속 할머니는 자신이 죽으면 혼자 남겨질 강아지가 안쓰러워 마당에 들어선 길강아지를 선뜻 들이지 못한다. 누군가 노년에 반려 동물을 키우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노년에 반려동물의 죽음을 감당하는 것도, 동물을 혼자 남겨두는 것도 두렵다는 이유에서다. 마토의 이야기를 읽으니 사실 반려동물을 들이기가 더 조심스러워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그들과 어떻게 마음을 주고 받아야할지, 이미 많은 죽음을 보아온 내가 또 하나의 죽음을 보탤 용기가 있을지(물론 인생사,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사고나 질병없이 순리대로 산대면야), 잘 모르겠다. 



p107
아세트아미노펜 300밀리그램과 카페인 30밀리그램을 먹어서 나아지는 것이 몸의 통증만일까? 마음이 아플 때도 누군가는 진통제를 먹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기엔 내가 너무 어렸던 건지도 모른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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