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현대 철학 - 아들러, 라캉, 마사 누스바움… 26인의 사상가와 함께하는 첫 번째 현대 철학 수업
안광복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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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프로이트를 시작으로 존 롤스까지 스물여섯 명의 사상가를 들어 규율과 지배, 사색과 고독의 부재, 목적성 상실, 하위 정치와 새로운 경제적 상상력의 필요성, 구어 문명의 재再도래, 창조와 지배와 자유, 영혼의 빈곤, 생명과 진화 등을 '욕망' '틀' '통찰' '어울림'을 주제로 이야기한다.  
 







이토록 찰떡 넘기듯 꿀떡꿀떡 받아 먹을 수 있도록 쓰여진 철학서라니. 카를 융, 라캉, 벤냐민 등 머리를 뜯어가며 읽었던 내용을 이렇게 수월하게 개념을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멋진 책이다. 다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현대 철학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국한된 얘기다. 입문서보다 더 쉽게 읽히는 책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이러구러 접해왔던 현대철학은 철학에 국한하지 않는 것으로 읽혀졌다. 이데올로기, 순수철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사회과학 등이 한데 맞물려 넓은 범위에서 철학적 사유를 아우르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해왔던 생각들이 전혀 틀린 건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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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보이는 '나'는 실체가 아닌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내가 '나'를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의 평가를 통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간다. 그래서 '나' 속에는 언제나 다른 이들의 시선과 평가가 담겨 있다. 라캉은 '나'는 타인의 욕망이 빚어낸 상상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인정받기 위해 짜여진 세상에 바라는 바를 욕망하며 살아가는데, 이는 '나'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음이다. 그러니  타인의 욕망을 무작정 따르지 말고 진정한 욕망을 좇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 감정이나 성품은 그 자체로는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이를 유용한 방향으로 이끌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아들러의 말이 참 와닿는다. 



시장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19세기 이후, 인간의 다양했던 삶의 동기가 오로지 '돈' 하나로 통일되었다. 칼 폴라니는 사회 저변에 널린 온갖 위험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며 이에 대한 원인을 한군데에서만 찾을 수도 없고, 이를 흑백논리로만 규정할 수도 없다고 하는데, 그런 차원에서 울리히 벡은 과학을 비롯한 각 분야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학문 아래 놓인 현실의 맥락에서 바라봐야 하는 '하위 정치'를 강조한다. 또한 사회에서 개인의 역할, 더 나아가 협력의 역할을 중요시 여긴다. 


규율 권력은 법과 원칙을 내세워 사람들을 서서히 길들여나간다. 미셸 푸코는 규율 권력이 감옥과 군대, 학교와 병원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 있다고 주장한다. 권력은 사람들이 자신이 강제당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고, 이로써 온 세상이 '행복한 감옥'이 되어가고 있음을 강조한다. 푸코는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파놉티콘을 언급하는데, 우리나라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옥사를 떠올려보면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납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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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스바움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전염에 대한 공포와 그로인해 비롯된 혐오의 감정을 느낀다. 특히 '접촉'은 전염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과거 유대인 게토, 미국의 흑인 구역  분리부터 현대의 따돌림과 혐오 표현에 이르기까지 이를 증거한다. 레비나스는  타인의 고통에 눈감고, 배려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폭력으로써 억압하는 처지에 발달하는 과학기술과 합리적 사고는 더 큰 증오와 폭력을 낳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생존 본능을 뛰어넘는 인간적 욕망이 가득하니 물질적 욕망에서 벗어나 양심과 형이상학적 욕망을 따르라고 권한다. 인간의 자유란 이러한 의무감과 책임에 기꺼이 따를 때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는데 자유와 의무와 책임을 묶어서 깊게 생각해볼 필요성을 갖는다. '옳음rightness' 보다 '좋은goodness'이 더 중요하다는 매킨타이어의 말이 좋더라.  


읽다보니 '인간 진화의 끝은 어디일까?' '인간 그 자체(육체와 영혼)의 자연 진화만을 진화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이 그야말로 '진화'가 맞기는 한 걸까?' 라는 막연한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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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시대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저자는 그 위대함은 철학이 시대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안광복 선생의 책을 읽으면 철학이 우리가 속한 사회와 삶에 얼마나 밀착되어있는지를 늘 깨닫는다. 빈부격차, 차별과 혐오, 기후변화, 전염병 등 철학은 이 문제들과 별개로 위치해 있지 않다.   


이 책에서 눈여겨 본 철학자는 에른스트 카시러. 아직 이 학자의 책을 접하지 못했거니와 용어가 낯설지만 적어도 저자의 간단한 설명은 흥미로워 읽어보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나치스 시대를 지나오면서 인류 문명의 방향에 대한 카시러의 사유가 작금의 시대에 아주 시의적절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한번쯤은 집중해서 작정하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철학자는 에마뉘엘 레비나스. 가벼운 에세이는 읽었는데 그의 문헌을 제대로 읽은 경험이 없다. '형이상학적 욕망'에 대해 잘 좀 읽어보려고.  



저자는 우리가 사는 21세기가 유대인이었던 레비나스가 살았던 20세기 야만의 시대와 얼마나 다른지를 묻는다. 보이지 않는 비열하고 사악한 방식은 더 발달했을테고, 적어도 전쟁은 없으려니 했으나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철학자와 사상 끝에 마련해 놓은 안광복 선생의 [생각 열기] 코너다. 혹시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대여섯줄에 걸친 간단한 정리를 읽고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다보면 앞선 내용들을 곱씹어볼 수 있다. 


내가 중등 이상 청소년들에게 꼭 추천하는 책이 안광복 선생이 아주 오래 전에 쓴 <열일곱 살의 인생론>이다. 그들이 짧게는 그들 인생의 3년을 걸고 학업에 집중하기 직전 읽어보라고 권하는 책인데, 이 책 <처음 읽는 현대 철학>도 한번은 읽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물론 위에 썼듯 청소년 독자뿐 아니라 현대 철학이 엄두가 나지 않는 독자에게도 권하는 바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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