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뷰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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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돌이켜보면 정적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함께 치열하게 싸운 뒤 찾아든 평화, 그가 자기 삶으로 끌어들인 사람에 대해 품어야 했던 잘못된 관심들.  

 


 





소설은 두 개의 줄기로 진행된다. 이스트앵글리아의 변두리 마을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줄리언과 과거 UA 요원이었던 플로리안을 추적하는 프록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적지 않은 인물들의 중심에는 에드워드 에이번이 있다. 


반파시스트에 반제국주의 볼셰비키였고, 반베트남전쟁소년단 주모자였으며, 청년공산주의자 연맹에서 정회원으로 활동했던 남자.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한 후 자기 의지로 아버지 나라, 폴란드로 돌아갔던 사람.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대의를 위해 사는 공산주의자. 



잘나가던 증권사를 그만두고 작은 해변 마을에 서점을 연 줄리언 론즐리. 어느날 저녁, 서점에 들어온 노신사 에드워드는 한동안 줄리언을 성가시게 해놓고 정작 책은 사지 않더니 서점의 지하실만 구경하고 나간다. 얼마 후 카페에서 만난 에드워는 뜬금없이 그가 죽은 줄리언의 부친과 동창이라는 말과 함께 서점 지하에 '문화공화국'을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한다. 그러고는 한참이 지나 예고도 없이 다시 서점에 나타나 본격적으로 '문화공화국'에 대한 조언을 하면서 생뚱맞은 부탁 하나를 한다.  


스튜어트 프록터 박사는 국토안보 수장이자 스파이캐처 팀장이다. 그는 토목업자 피어슨이라는 신분으로 어느 군대 기지의 영국 연락장교 지휘관 토드 앞에 앉아 있다. 스튜어트가 이곳에 온 목적은 기술적 사고때문이라는데 토드는 의심스럽다. 진짜 기술적 사고 때문이라고? 


ㅡ 


'실버뷰'는 정보국 최고 요원으로서의 영광을 잊지 않고 뼛속까지 요원이었던 데버라, 그리고 이도저도 아닌 채 자신의 신념대로 움직여왔으나 노년에는 사랑하는 사람과도 삶을 공유할 수 없고, 가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어디에서도 안주하지 못하며, 위로조차 받지 못하는 에드워드의 모습처럼 어떤 이유에서든 현직에서 물러난 스파이들의 뒷모습을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튜어트는, 그리고 나도 묻고 싶다. 에드워드, 당신 정체가 뭐냐고, 그동안 그렇게 수많은 인물로 살았으면서도 여전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당신의 정체가 도대체 뭐냐고. 당신의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냐고. 그에게 있어 사랑도 신념이었을까.



책에는 존 르 카레의 아들 닉 콘웰의 후기가 실려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소설은 작가가 꽤 오래 전부터 수정을 반복하며 마감없이 써왔고, 작고할 때까지 미출판 상태로 남아있었다는데, 완독을 하고보니 존 르 카레가 왜 선뜻 출간을 할 수 없었는지 알겠더라는.  


첩보국은 해결책일까, 문제의 원인이었을까?
이는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든 듯 싶다. 


어쩌면 이 소설은 작가 자신에게, 그리고 한 시절 신분을 숨기며 설사 죽음에 이르더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신념 하나로 해왔던 그들에 대한 헌사가 아닐런지.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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