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의 마지막 한숨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2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58.
이렇게 분열된 집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네 집이 영원히 화합하지 못하기를, 주춧돌마저 모래처럼 산산이 부서지기를, 네 자식들이 네게 반기를 들기를, 그리고 네가 아주 비참하게 몰락하기를 빈다. 
 






소설은 화자 무어를 시작으로 다 가마ㅡ조고이비 가문의 연대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임팩트 있는 첫문장을 시작으로 저자는 도입부에서 독자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끌어모으는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 살만 루슈디는 그야말로 탁월한 경지를 보여준다. 여타 작가들이 숨겨두었다가 중반 이후에 풀어놓을 법한 것들을 도입부에서 이미 공개해 버린다.  


『무어의 마지막 한숨』은 다 가마-조고이비가家 가족사를 얘기한 '무어 연작'을 가리키며, 동시에 바스쿠 미란다가 자신의 작품마다 새겨 넣은 조고이비 일가의 상징적인 그림으로써 그가 붙인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아우로라 조고이비의 '무어 연작'은 1957년부터 1977년까지가 초기이고, 1977년부터 1981년까지의 기간이 성숙기, 무어가 집을 떠난 이후 그의 행적을 묘사한 마지막 '암흑기'로 구분된다. 아우로라의 무어 연작은 가족사뿐 아니라 세계대전 발발 직전부터 20세기말까지 시대의 혼란을 대변하는 것으로 읽혔다.  


다 가마 집안의 몰락은 프란시스쿠 다 가마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한다. 


ㅡ 


재미있는 설정은 모라이시(무어) 조고이비 가족들의 직업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점인데 아브라함은 사업가(그냥 사업가가 아니다), 아우로라는 예술가, 이나는 섹슈얼리티 연예인, 미니는 수녀, 마이나는 급진파 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당시 인도 아대륙의 정치, (지하 경제를 포함한) 경제, 종교, 사회, 군사, 예술, 인도 관점에서의 국제 정세 등을 아울러 그려내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무어는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으나 조로증을 앓고 있는, 대중의 시선에서는 비정상인으로 그려져 모두로부터 고립되고 소외된 인물로서 마치 극장의 관객처럼 시간의 흐름을 관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고이비 가족의 부적절한 관계, 딸과 아들이 아버지를 공격해야하는 아이러니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조고이비가家에 빗대어 은유하고 있다. 


ㅡ 


유대교도로 키워졌으나 무슬림 혈통을 물려받은 아브라함, 민족주의자 프란시스쿠와 카몽시, 기독교도이며 친영주의자 이피파니아, 사회주의자 혁명가 이사벨라, 아랍인 바스쿠, 카톨릭교도이지만 무신론자와 다를 바 없는 아우로라, 그리고 기독교도와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나 우파 힌두교도의 행동대원이었던 무어.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 기독교, 무신론 등 종교로 세상을 갈라놓는 건 의미가 없음을 얘기한다. 


이 소설에는 네 개의 공간이 존재한다. 첫 번째 공간은 이 소설에 있어서 1세대에 해당하는 프란시스쿠와 이피파니아의 카브랄섬이다. 두 번째 공간은 아우로라가 군림하는 말라바르언덕의 살롱, 세 번째 공간은 카몽시의 공중정원, 네 번째 공간은 바스쿠 미란다가 지은 성채 '리틀 알람브라'다. 특히 조고이비가의 왕국인 엘레판타는 의도적으로 모든 종교적 유대 관계를 거부하는 유일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은 낙원이며 금단의 열매를 먹으려하는 자는 추방당한다. 반전이라면 이 낙원을 유지하는 자는 알고보면 아우로라가 아니라는 것.  


ㅡ 


작가는 '무어 연작'의 공통 주제는 무어의 비극, 즉 다양성이 통일성 때문에 파멸하는 비극, '여럿'이 '하나'에 패배하는 비극이라고 썼다. 그야말로 인도 아대륙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봄베이가 포르투갈과 영국의 결혼으로 탄생한 사생아라고 표현하면서 봄베이의 폭력과 타락과 퇴폐를 들어 한때 인종, 민족, 신앙에 상관없이 조화롭게 살아온 시절을 언급 한 마디 없이 상기시킨다. 


살만 루슈디는 이피파니아가 집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정 식구들을 끌어들이고, 다시 집안을 일으키는 장본인이 이사벨라였으며 그녀가 단명하는 설정을 시작으로 소설 곳곳에 이와 같은 장치를 통해 식민 시대, 그리고 외세에 의존해 오히려 분열을 자초했던 역사를 꼬집는다. 또한 겉으로는 신사적이고 인자한 호인의 외형을 갖추었으나 지독한 냉혈한 아브라함과 외로운 아웃사이더에서 점차 폭력과 광기에 휩쓸리는 무어의 대비는 이 소설 전체 인물을 놓고 봤을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설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작가 특유의 유머 안에서 끊임없이 비극적 결말을 암시한다. 우마는 왜 조고이비가를 이렇게까지 분열시키고 싶어했을까? 그녀는 당시 인도의 분열을 더 극단적으로 조장했던 상징이 아닐런지.  


소설의 마지막.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유대인 혈통의 혼혈 출신 후손으로 평생을 힌두교도와 무슬림이 대립하는 인도에서 가톨릭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던, 신이 아닌 부모가 종교였던 모라이시 조고이비는 도대체 어디에 정착했어야 할까. 그가 있어야 할 곳은 낙원이며 동시에 지옥이었던 엘레판타뿐이려나. 



혹시 아직 살만 루슈디의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한밤의 아이들>과 <무어의 마지막 한숨>을 연이어 읽어보기를, 그리고 인도의 근현대사를 개괄적으로나마 인지하고 읽는다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재미있을 것임을 보탠다.  


"당신한테는 앞으로도 영원히 바깥에만 머물러야 하는 저주를 내리겠어. 이제 안전한 궁전 따위는 없고, 이렇게 정원에서 당신을 기다릴 거야. 끝없이 이어지는 이 바깥에서 당신을 끝까지 뒤좇을 거야. (p486)" 마치 작가 본인의 얘기같기도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