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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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읽는 비비언 고닉의 책이다. 
일전에도 읽으면서 느낀점이지만 나이, 문화, 성장 배경, 살고 있는 도시와 환경이 다른데 어쩜 이렇게 찰떡 공감을 자아내는지 신기할 정도다. 








도입부에서 레너드와의 우정에 대한 짧은 이야기로 이 책을 시작하는데 이미 훅 이입이 되더라는. 나는 저자가 레너드를 대하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겠더라고. 어떤 대상을 절친이라고 여기지만(물론 상대와는 별개로 나만의 생각이다), 시도때도 없이 과하게 자주 만나는 것은 주춤하게 되는 그 마음. 너무 잘 알지.  


우정에는 두 가지 범주가 있다고하면서 하나는 서로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관계고, 다른 하나는 활기가 있어야만 같이 있을 수 있는 관계라고 말한다. 친구들과 주변의 지인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봤는데, 일리 있는 말이다. 사람마다 관계를 맺는 데에 미묘하게 조금씩 다르다는 생각이 예전부터 들어더랬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 차이를 잘 이해하면 좋은 관계가 지속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일테고.  



한 에피소드가 끝나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 혼잣말로 중얼거리거나 책 한 켠에 연필로 살짝 메모해 놓은 문구들. 
누군가를 도와주려면 제대로 도와야지, 햄버거에 탄산을 빼먹는 건 반칙이지, 암.
삶에 있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나아가는 것 뿐, 내 뒤에 누군가가 있을텐데 뒤로 갈 수는 없지 않나. 잠시 쉬어가는 건? 당연히 괜찮지.
조언을 해주는 것 이상으로 조언을 듣는 것 역시 그 사람의 인격에 달려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세상 일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겸손해야 하는 거고.
인생은 어차피 고독한 거야, 너나할 것 없이.
자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이디스 워튼, 아무도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는 헨리 제임스. 누구의 말에 더 동감하지? 


ㅡ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평생 내적으로 분열된 상태에 있다. 성장하길 원하는 동시에 성장하지 않길 원하고, 폭력을 혐오하면서도 폭력으로 실현되는 정의구현에는 박수를 보낸다. 사디즘과 마조히즘. 고통 그 자체는 아픔의 원친인 동시에 안도감의 원천이다. 정의와 원칙을 수호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그것이 나에게 작은 불편함이라도 끼치게 된다면 얘기는 얼마든지 달라진다. 이렇듯 우리는 심리적으로 단 한 순간도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최소한의 것만 남기도 다 덜어낸 공간에 투영된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내면이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일테다. 



에피소드 중에서 가슴이 답답했던 것 하나. 버스 요금을 냈다는 노인과 그가 요금을 내지 않았다는 버스 기사가 맞서고 있다. 기사는 결국 그 노인이 요금을 내지 않아서 운행을 중단하고 승객들을 모두 하차시킨다. 난감해 하는 사람, 욕을 하는 사람, 순순히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 결국 노인이 버스 타기를 그만두고서야 다시 운행을 하는데, 그 소동이 한 시간 정도 소요됐다. 여기서 기가막힌 노릇은 아무도 노인의 버스 요금을 대신 내주는 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게 정서의 차이일까? 아무튼 나는 그냥, 한숨이 나왔다.


ㅡ 


도시는 늘 번잡하고, 자주 황량하다. 과도한 경쟁과 삭막해져가는 인심과 빠듯한 살림살이에 푸념을 늘어놓지만, 늦은밤 창가마다 켜지는 불빛이 다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주변인들 중에는 전원주택을 지어 외곽에 사는 것이 바람이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도시를 떠나서 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태어나서 한 번도 도시 밖에서 일상을 살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러니저러니해도 도시에서 살 수 밖에 없다. 


비비언 고닉의 글은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해학적으로 읽혀진다. 부모 세대와의 이해, 우정과 애정의 경계, 연애와 결혼, 대중 안에서의 외로움, 부모가 된다는 것, 노동자 계급 이민자들의 삶, 비혼 여성에게 향하는 편향된 시선, 노년의 쓸쓸함, 중산층에 진입하지 못한 도시 생활자의 소외감 등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책을 펼친 독자들과 닿아있다.   


늦은밤, 차 한 잔 놓고 읽는 그 기분이 참 좋더라. 




26.
자기 자신과 친구가 되지 못한 사람은 어떤 타인에게도 우정을 기대할 권리가 없다. 자기 자신과 친구가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으뜸가는 의무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게 적대적일 뿐 아니라 자기를 섬기는 타인의 가장 선한 마음조차 꺼꺼어버리고 '세상에 친구 따윈 없다'며 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불평까지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카시우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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