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자이언트 픽
이유리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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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죽음이란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모두에게 다르며, 볼 수 없는 존재의 삶을 끊임없이 보고 있는 뼈의 아름다움과 같은 것이로구나. 



역시, 아무렴... 간질간질 말랑말랑한 소설들이 아니었어... . 


책에 실린 네 편의 소설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랑, 욕망, 죄책감, 자아감, 인간성, 육체, 그리고 죽음.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본질과 본성에 대한 고뇌를 SF 요소로 무겁지 않게 다루고 있다. 









장기 이식처럼 감정 이식이 가능하다?!
감정의 쓰레기같기만 한 슬픔과 상실감은 무용한 것인가? 그리고 전이 받은 감정은 내것이 될 수 있을까? 그것까지야 알 수 없다만, 경험상 누군가와의 연대와 친밀감은 행복감에서 오는 것 이상으로 함께 버틴 고난 극복 이후에 더 단단해지더라. 


ㅡ 


검은 구체에서 나오는 '소리'는 듣는 사람의 죄책감을 자극한다. 그들에게는 누나가 유학을 가지 못한 것도, 혼자만 살아남은 것도, 딸이 아픈 것도, 모두 당신들 탓이 아니라는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탓'이 아닌, 원망이 아닌, 괜찮은지를 먼저 물어야할 터다. 


ㅡ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갈망, 혹은 진짜 내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란 대체 뭘까? (p134)


자신의 정체성이 인간인지, 기계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존재가 갈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안드로이드가 갖는 감정과 육체에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인간이 필멸의 존재이듯 기계도 마찬가지다. 한때 인간의 삶을 살았던 수안이 녹슨 금속 피부를 원했던 까닭은 두 자아를 놓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지.  


ㅡ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 2일 자정을 넘을 바깥을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솜새끼에 의해 스르르 소리를 내며 기화하기 시작했다. 타노스가 손가락 튕김 한 번으로 인류의 절반을 날려버리듯이.  


순위 매기기와 극단적 경쟁.
이 두 가지 만큼은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있겠나. TV 예능을 비롯해 각종 콘텐츠에서는 관찰 예능과 서바이벌 방식(혹은 소재)이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물론 불법도 아니고 몰래 보는 것도 아니지만 일정한 공간 안에 대상들을 모아놓고 특정 상황을 연출해 경쟁을 붙이며 이를 관찰하는 심리는 도대체 무엇이고, 공공연하게 불특정다수에게 노출되는 것을 감수하는 것은 또 무슨 심리일까. 


ㅡ 


유가족이 없는 독거노인의 수는 점점 많아진다. 화장 비용을 마련해 놓지 못한 노인의 재는 보관되거나 뿌려지지 않고 퇴비로 쓰이거나 모래에 뒤섞였다. 


안드로이드 장의사 로비스, 늙은 청소부 모미. 둘의 즐거움은 퇴근 시간에 갖는 아주 짧은 한담이다. 어느날, 휴게실에서 잠든 듯이 죽음을 맞아 영안실 스테인레스 침대에 누워 있는 모미는 자신의 사후 처리를 미처 선택하지 못했고, 유가족도 없었기에 원칙대로라면 시신은 방부 처리 없이 화장하게 된다. 뜨거운 것을 싫어했던, 그래서 차가운 우주를 좋아했던 모미를 차마 불구덩이에 넣을 수 없었던 로비스의 선택.  


이런 판단을 내린 이유가 뭐냐는 첼의 물음에 로비스는 마음이 시키는 일이라고 대답한다. 안드로이드에게 마음이라니. 이제 마음이란 것을 알게 된 로비스가 남아 있는 세월 동안 무영과 첼의 시신을 염했을 때, 이전과 같을 수 있을까.  


ㅡ 


감정 소모를 핑계삼아 이기주의를 합리화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행위를 경쟁력이 우수하다고 추켜 세우며, 누군가를 끊임없이 쳐내고 사다리를 오르는 세태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다정하다고 생각했던 영욱의 냉소적인 한 마디와 민낯이 섬찟했고, 미림과 J의 마지막 모습에서 마음이 내려 앉았다. 내색하지 않았던 현수도, 담담한 척 했던 세인도 안쓰럽긴 마찬가지다.  


사랑으로 시작한 소설은 죽음으로 끝난다.
쓰여진 과거를 통해 미래를 읽고, 미래 소설을 읽으면서 현재를 반추하는 것이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뼈의 기록>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게 참 좋았다. 
백 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염을 해왔고, 인간의 소멸을 지켜봤던 로비스는 자신의 전원이 꺼지는 순간, 무엇을 생각했으려나.  



255.
살아 있던 모든 것들은 죽은 후 메마른다. 로비스를 거쳐간 시체들도 화장되지 않는다면 낙엽처럼 말라 어느 한순간 무너져 흙과 다름없어지리라.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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