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바이올린 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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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요하네스 카렐스키의 영혼은 광기에 가까워지곤 하는 이상한 성향이 있었다. 그 성향으로 인해 그는 단 하나의 존재 이유만을 갖게 됐는데, 그것은 자신의 생生인 영혼을 음악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 미완성 악보인 자신의 영혼을 매일 조금씩 더 천재적으로 연주하는 것이었다. 
  






 
천재 바이올린 연주자 요하네스, 바이올린 장인 에라스무스.
악기를 만드는 사람과 연주하는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 이들의 만남에 '운명'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바이올린이라는 공통점을 넘어서 음악이 인생의 전부이며 그들의 영혼을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은 사랑하는 여인의 목소리를 악기에 담으려했고, 다른 한 사람은 오페라 작곡에 일평생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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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가 오페라 작곡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에서는 예술가로서의 영혼과 광기를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그리고 있는데, 나는 그의 집착이 외로움에 기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곱 살부터 10년 동안 천재 소년이라는 유명세를 타고 마음 한조각 나눌 친구도 없이 어머니와 단둘이 유럽 곳곳으로 순회 연주 공연을 다니고, 화려한 연주회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밤이면 늘 외로웠던 요하네스가 어머니가 죽은 후 대중으로부터 빠르게 잊혀진 허허로움이 어땠을까를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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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라의 초대로 참석한 작은 모임에서 에라스무스는 몇몇 귀족 청년들과 논쟁을 벌인다. 카를라는 에라스무스에게 그녀의 음색을 재현할 수 있는 악기를 만들 수 있는지 묻는다. 카를라의 재촉에 그녀를 위해 그녀의 목소리와 같은 가장 아름다운 바이올린을 만들겠다고 장담하는데, 그순간 그의 마음은 카를라를 향한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객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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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들, 잃어버려야했던 것들. 그것은, 아름다운 음악을 악보 안에, 혹은 악기 안에 그들의 것으로 가두어놓을 수 있을 것라는 오만함에 대한 비극적인 대가가 아니었을까.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프랑스군이 베네치아를 점령했을 당시 산마르코 광장에서 열린 성령강림대축일 축제에서 이탈리아 장교들과 프랑스 장교들이 한데 어울린 부분이었다. 축제 동안 춤과 노래가 적군과 아군을 가르지 않았던 것처럼 예술은 어느 개인에게 종속될 수 없음을, 세 남녀를 통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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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요하네스와 에라스무스의 서사를 구구절절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는다. 절제되고 시적이며 함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그 감정이 오롯이 빠져들었더랬다. 읽는 내내 니콜로 파가니니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영혼이 담긴 바이올린이 부숴졌든, 불후의 명작이 됐을지도 모를 오페라가 소멸됐든, 그들에게 안식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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