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임볼로 음붸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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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정부는 코사와 마을 사람들은 참석하지 않은 베잠의 회의에서 코사와를 미국의 석유회사 펙스턴에 팔았고, 유전에서 마을 우물로 흘러드는 오염물의 독에 의해 아이들이 하나둘씩 죽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정부와 펙스턴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코사와를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마을의 대표단이 베잠으로 향했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펙스턴 본사가 코사와 사람들을 위한다는, 정부가 코사와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는, 수도의 사람들이 코사와 사람들의 죽음에 애도를 전한다는, 펙스턴과 정부는 코사와의 친구라는, 그 모든 거짓말 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코사와 사람들이 알고 싶은 것은 그들의 공기와 물과 땅이 언제 다시 깨끗해질 건지 구체적이고 정확한 계획이고, 그들이 바라는 것은 깨끗한 물, 깨끗한 공기, 깨끗한 음식이 전부다.







 
주인공 툴라가 열 살에 시작되는 소설은 가상의 마을 코사와를 배경으로 30년의 세월을 서술한다. 화자의 시점을 달리하는 이야기 구성은 말라보와 사헬을 비롯한 기성세대의 관점, 다른 하나는 그들의 자식인 '어린이들' 관점에서 진행되는데, 그 '어린이들'이 청년 시기를 거쳐 부모의 세대가 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이어진다. 


독재자가 군림하는 가난한 나라에서 백성들이 죽어가는 것은 코사와뿐이 아니다. 어느 마을에서는 군인들이 소녀를 유린하고, 다른 마을에서는 벌목으로 산림과 땅이 죽어가고 있고, 또 다른 마을에서는 광산으로 주민들이 쫓겨났다. 이 마을들에 사는 사람들이 베잠에 와서 울며 도와달라고 빌었지만, 베잠에는 그들을, 그들의 요구를 기억하는 자가 아무도 없다. 열 살의 아이들이 아버지가 되고, 그들의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되도록 코사와는 달라지지 않았다. 


코사와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고통은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기름을 채굴하기 전에는 고무 채취로 고통받았고, 강간 및 인신 매매도 당했다. 독재자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법치를 들어 파괴했으며, 부정부패를 넘어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국토를, 국민을 외국 기업에 팔았다.  


거대 자본, 다국적기업, 내전과 전쟁, 기후변화 등 여러 이유로 우리는 살던 마을을, 나라를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툴라가, 사헬이, 야야가 그랬듯이. 지구라는 행성 역시 필멸의 존재니 인류는 그 끝이 언제든 우주로 나가지 않는 이상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문명'과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약자들을 약탈하는 것에 수치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 이것이 코사와만의 일이겠는가. 경제 선진국 안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나. 코사와가 이해한 문명과 경제성장은 모두가 풍요로운 세상이다. 


ㅡ 


소설은 토양과 수질 오염으로 인한 코사와 마을 사람들과 투쟁에 앞장 선 툴라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가부장제에서 제 삶을 본인 뜻대로 살지 못하는 여성과 공동체의 관습을 따르고 분열을 조장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며 치유하지 못한 채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아이들,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족을 부양해야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가장들, 나라와 가족 중 우선 순위를 결정해야만 하는 딜레마, 혈연과 인종에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상실감 등 복합적인 문제들이 얽힌 인물들의 면면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어제까지만해도 동네를 뛰어다니며 함께 놀던 친구들이 이유도 모른 채 줄줄이 죽어나가고, 대화를 하겠다고 집을 나선 아버지가 실종되고, 재판도 없이 마을 남자들이 교수형을 당한 경험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야하는 어린이들, 우리가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아이들 죽음의 참담함은 말할나위 없고, 소설 초반에 나를 더욱 분노하게 했던 점은 소녀에게서 더할 수 없이 자상했던 아빠를 앗아갔다는 것보다 고작 열 살 아이에게 평생을 바쳐 복수를 결심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툴라가 유학 간 미국에서 코사와의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의 서명은 '언제나 우리 중 하나, 툴라'다. 그녀가 일평생 생득권으로 삼았던 '우리'. 툴라는 서른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자신의 남은 생이 험난한 투쟁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만이 유일한 삶의 길임 또한.  


내가 가장 애잔하게 바라본 인물은 사헬이다. 스물여덟 살 무렵에 과부가 된 그녀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는 생이 다할 때까지 먼저 떠난 남편에 대한 애도뿐이다. 시어머니인 야야의 넋두리처럼 사헬의 곁에 누가 있어줄까? (남편과 자식을 앞세운 그녀에게 물리적 편안함이 대수일까.) 



펙스턴은 장학재단을 설립해 코사와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코사와 마을 자리에 새로운 유전을 개발하고 있으니 헛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펙스턴이 후원하는 돈으로 학업을 이어갔고, 새로운 삶을 위해 유럽과 미국으로 떠났다. 서른 해가 지나 코사와의 아이들은 유럽과 미국의 기업이나 베잠의 정부에서 일자리를 얻어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 이 기막힌 모순을 어떻게 하나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 말라보가 베잠으로 가지 않았다면, 마을 사람들이 펙스턴 대표단을 가둬놓지 않았다면, 봉고가 또다시 베잠으로 향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그들이 살았다면 코사와 사람들의 고통의 무게가 줄어들었을까? 아무도 알 수 없다. 오스틴의 말처럼 때가 되면 변화가 올지도 모르지만, 끝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저항해야하는 까닭은 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 뿐이기 때문이니까.


소설의 인물 설정상 굳이 따지자면 툴라가 저자와 가장 가까워 보일 수 있겠으나 나는 오스틴과 툴라 두 사람 모두에게서 저자가 느껴진다. 대화와 행동. 변화를 꿰하는 노력에는 오스틴의 방식, 툴라의 방식으로 나뉘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자했음이 아닐런지. 마치 독백처럼 읽혔던 툴라의 편지에서 전해지는 고뇌와 숙고의 과정을 통한 확신과 결의가 참... 진하게 와닿는다.   



소설의 마지막장을 덮고 긴 숨을 내뱉었다.
너무나 애처롭고 아름다웠던 툴라를 어떻게 잊을까.
이 먹먹함이 가시려면 또 며칠의 시간이 걸릴 듯 하다. 


나의 '올해의 소설'에 올린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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