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눈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린 여섯 편의 소설들이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헤밍웨이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아마 이전에 읽은 책들이 대부분 장편이기 때문이지 싶다. 올해 안에 헤밍웨이의 단편선 한 권을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돈, 여자, 거짓된 사랑, 여행, 화려하고 방탕했던, 그러나 한편으로는 타인의 처절한 투쟁과 고통을 지켜봤던 날들 뒤에 찾아온 슬럼프와 삶의 회의. 이런 삶이라면, 이토록 피곤한 삶이라면 그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남자, 그리고 필요에 의해서 서로를 팔아버리듯 사랑한 두 남녀. 언젠간 찾아올 거라 예견한 죽음에 대한 기다림. 사랑은 둘이, 책임은 혼자. 강간이 사랑을 정당화하지 않음을 생각치 못하는 파렴치한 무지. 머리를 자르고, 고양이를 들여도 해소되지 않을 외로움.  


ㅡ 


이 책에는 여성의 관점에서 쓴 작품이 세 편 있다. 낙태와 강간. 내가 읽은 헤밍웨이의 작품 중 이런 소재를 중심내용으로 다룬 소설은 기억에 거의 없다. 그런데 두 단편에서 헤밍웨이의 입장은 전달되지 않는다. "그냥 이렇다고"라고 말하는 정도의 느낌이 전부다. 



내가 이 책에서 두 번 읽은 작품은 <흰 코끼리 같은 산등성이>다. 한 번 읽었을 때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했다. 두 번째 읽을 때 원서까지 뒤져서 같이 읽었다는(어지간해서는 원서를 안 읽는다. 내가 어떤 번역가보다 영어 실력이 더 나을리가 없기 때문에). 아무튼 이 소설은 두 남녀가 낙태를 두고 벌이는 대화이고, 결론은 없다. 남성은 임신한 연인에게 낙태를 집요하게 설득한다. 임신 즉 아이는 두 사람 사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유일한 것이고, 중절 수술은 수술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는 간단한 일이며, 낙태만 한다면 그들은 지금처럼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남자의 요지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그럼에도 네가 원하는대로 하라고, 변함없이 너를 사랑할테고 기꺼이 동참하겠지만, 자신에게는 의미없는 일이며 그로 인해 벌어지는 책임은 여자의 몫임을 넌지시 내비치면서. 여자는 바로 알아챈다. 그는 '나'를 걱정하지 않음을, 뱃속의 아이는 내다버려도 되는 '흰 코끼리'와 다름하지 않음을.  


소설 속 여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내가 남자에게 한마디 보태자면, 여보세요, 그 간단한 수술대 위에 눕는 당사자는 당신이 아니랍니다. 이 소설에서는 여자의 낙태 여부, 혹은 생명의 존엄성을  말하고자한 건 아닌 것 같다. 임신과 낙태의 선택권이 누구에게 우선적으로 쥐어져야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싶다.  


ㅡ 


그리고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외로움. 
삶의 회한, 독선적인 사랑,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어도 위로와 걱정 한 마디 들을 수 없고, 둘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보다 더 지독한, 바로 그 외로움.  


이런 측면에 있어서 보자면 <킬리만자로의 눈>과 <빗속의 고양이>가 대비된다. 전자가 남자의 외로움이라면 후자는 여자의 외로움이다. 그런데 두 소설이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입장의 차이가 보인다. 어째 연인이든 부부든, 외로운 사람이 누구든 간에 감정적으로 약자는 여자로 그려진다(내가 그렇게 읽은 건지도 모르고). 재미있는 점은 두 소설 다 외로움을 내비치는 상대에게 그들의 짝꿍이 던지는 말은 "제발 입 좀 다물라"는 것. 그리고 <미시간 북부에서>의 남자 역시 두려워하는 여자를 무심하게 외면한다.  


외로움은 소통과 공감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일텐데, 외롭다고 호소하는 그들에게 대놓고 말을 차단하는 것은 상대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것을 넘어서 그 의지조차 없는,참 냉정하고 답답한 일이다.   


ㅡ 


실제로 한 곳에 거주하기보다는 유랑하듯 여기저기 머물던 작가의 이력 덕분인지 아프리카, 스페인, 이탈리아 등 이 짧은 소설들의 배경이 참 다양하다.   


삶이 늘 계획대로 따라가지는 것도 아니고, 안달복달한다고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자는 마음, 그리고 결과에 마음 다치지 말자는 다짐.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받아들여지는 걸 보면 이제 나도 정말 나이를 먹어가나보다.  




사족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여자는 사냥과 아프리카를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그녀가 사랑하는 방식의 단면이 보이는 듯 하다. 물론 이후에 말에서 '사냥을 할 수 있는' 아프리카를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이 말이 참 모순적이면서 동시에 해리와 자신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행복한 사랑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나...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