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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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이 녀석 게르버! 새 장난감을 애타게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쿠퍼는 그를 기다렸다. 그를 망가뜨릴 작정이었다. 



한 학생을 통해 입시위주의 권위적인 학교를 고발하는 형식을 취하는 이 소설은 작가가 이십대 초반에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 쓰여졌다.  
 







고등학교 졸업반 새학기 시작의 날. 자신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교수 아르투어 쿠퍼, 일명 쿠퍼 신이 담임이 된 것에 크루트 게르버는 긴장한다. 학생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신으로 군림하고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하찮은 존재라고 여기는, 허영심의 노예인 쿠퍼 교수는 누구든 그의 권위를 건드리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성적이 낮거나 허약한 학생들은 무시하고 아예 '미흡'으로 정해놓은 뒤 상종조차 하지 않으며, 심지어 혼자 독보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 학생들의 의복조차 일사불란하게 똑같은 옷을 입히고 싶어한다. 또한 편애를 이용해 학생들의 질투와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학생들 사이를 반목하게 만들어 자신에게 반기를 들지 못하게끔 한다. 한마디로 학생이란 그의 절대 권력을 확인시켜주는 도구에 불과했다.  


쿠퍼가 특히 학교에서 권위와 권력적 지위를 고집하는 이유는 학교라는 세력권을 벗어나는 순간 자신은 보통의 존재, 어쩌면 보통의 존재만큼보다 더 관심을 얻지 못한다는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학교 밖 일반인들은 그의 뛰어난 수학적 능력에 존경심은 물론 관심도 없었다. 그렇기에 학교는 그의 삐뚤어진 욕구를 채우는, 그가 권능있는 신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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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우리가 그동안 겪어왔던 입시 교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과목별 선생마다 졸업시험(이것으로 대학 입학이 결정된다)을 강조하고, 터질듯한 긴장감으로 인해 예민해진 학생들 사이에서는 갈등이 반복된다. 동급생의 죽음을 앞에 두고 친구에 대한 애도보다 다음 수학 필기시험이 더 우선한다.  


개개인 각자가 가진 재능과 개성을 무시한 채 오로지 성적 하나만으로 '우수'와 '미흡'을 규정지으며, 단 한 번의 입학 시험으로 그동안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함부로 재단할 뿐 아니라 목전에 있는 시험을 위해서는 우정이나 동정 따위는 잠시 접어 주머니에 넣어둘 것을 무언으로 강요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백 년 전 오스트리아와 현재의 대한민국이 별반 다르지 않다.  


적어도 스스로 당당하다는 자부심은 있어야 함에도 쿠퍼 교수의 부당함에 불평하고 실패한 결과를 놓고 다른 실패 때문이라고 변명하기에 급급하며, 정직함과 자제심과 줏대조차 없는 본인의 모습을 보면서 쿠르트는 점점 스스로에 대해 가치 없고 쓸모 없고 불필요한 존재라고 여긴다. 자신에게 절망해 자조처럼 읊조리는 그의 말은 입시생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죄인의 위치에 놓는데, 이는 안타깝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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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중반부까지는 쿠퍼 교수만을 악당처럼 그려지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다른 교사들 역시 정도의 차이일 뿐 비겁하기는 마찬가지다. 쿠퍼는 변함없이 독재자의 펜을 휘둘렀고, 그가 겨냥한 화살은 거의 전부 쿠르트 게르버를 향했다. 원래 학생에게 내리는 구류 처분은 교수회의 결정에 따라 행해지는데, 쿠퍼는 제 마음대로 쿠르트에게 구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다른 교수들은 쿠퍼의 부적절한 행위를 알면서도 학생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 쿠퍼의 거칠고 막무가내 횡포에 대응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인데, 이것이 선생으로서의 권위를 오히려 격하시키는 것임을 왜 모를까.  


몇몇 학생들의 캐릭터를 잠깐 언급하자면, 쇤탈은 제 잇속만을 챙기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태 파악을 객관적으로 하는 학생이다. 어차피 졸업을 하기 전까지 그들의 입시 합격 여부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은 교수이고, 교수진 내에서도 강자가 누구이며 또한 그들의 부당함을 건의해봤자 소용없음을 간파하고 있다. 타의든 자의든 순종을 선택한 쇤탈은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돋보이는(?) 캐릭터는 레비. 2년이나 유급했음에도 능청맞기가 이를 데 없다. 독재자 쿠퍼에게 펀치를 날리는 유일한 학생이자 저항자. 내가 고딩 때 이 책을 읽었다면 한 번 따라해보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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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1930년에 발표된 것을 감안하면 선생에게 휘둘리는 상황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도 그야말로 선생은 갑이요, 학생과 학부모는 을이었다. 훈육과 사랑의 매라는 명분으로 체벌에도 거리낌이 없었고, 학부모가 선생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는 일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였으니까. 199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이 50%임을 생각해본다면 짐작이 갈 것이다.  


소설에서 쿠르트의 어머니가 쿠퍼 교수를 찾아가 일언지하에 면담을 거부당한 모습, 그것도 본인이 직접하지 않고 동료에게 시키는 것도 모자라 학부모의 말을 중간에 끊어내는 태도는 당시 선생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쿠퍼는 인격적으로도 선생으로서 적절한 사람이아니다. 수업에 있어 학생은 보조적 역할로 치부하고, 아들의 성적 부진이 모두 부모의 탓이며, 병상에 있는 학생의 아버지가 충격으로 죽든 말든 규정을 들이밀며(그것도 제멋대로 부당하게 적용한) 악의적으로 몰아붙임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자랑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이 사람은 선생의 소임이 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역할이 아닌 일정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학생을 걸러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도 악착같이 티끌같은 흠집까지 찾아내서라도 반드시.



입시의 실패가 대역죄이자 사형선고이며 교수대라고 표현하는 게르버는 자신을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마치에 매인 말에 비유한다. 게르버의 마지막 선택은 입학 시험의 당락 여부와 관계없이 앞으로 살아갈 인생 자체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 아닐까.   


입시에 치이고 짝사랑에 고통스러우며 관능 앞에 흔들리는, 마치 통속소설의 주인공처럼 방황하는 청춘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이 소설은, 너무나 비극적이고 사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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