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해의 철학 - 부패와 발효를 생각한다
후지하라 다쓰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사월의책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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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세계의 가치의 진정한 역전은 세계를 분쇄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세계를 비옥하게 하는 일에 존재한다.  



이 책은 생태학을 기본 줄기로 삼고 생물학 개념인 부패와 분해를 통해 과학, 경제, 철학, 문학, 교육, 환경 등 각 분야에서 우리가 간과했거나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외면해왔던 사회 현상들을 고찰한다.  









쓰레기란 어떤 특정한 사회경제 상황 속에서 그 물건의 최종 형태를 나타내는 말이고, 다른 측면에서 말하자면 어떤 것의 생산량이 자연의 분해 능력을 웃돌 때 비로소 발생한다. 어떤 것의 속성이나 기능이 최종적으로 다 소진되어 운동의 방향성이 상실되고 마침내 사라져버릴 때까지 계속해서 흡수되고 이용되는 것을 생태학 세계에서는 '분해'라 부른다.  


'공통적인 것'의 부패를 초래하는 것으로 가족 제도와 민족주의를 든 네그리와 하트는 가부장적 문화의 확산,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지배를 강화하는 '제국'의 양태를 띠고 있다고 했다. '제국'은 자연적인 부분들을 대지로부터 분리하고 사유화 및 상품화함으로써 '부패'시킨다. 자연의 사유화는 사유 및 착취를 지속시키는 방패이며 이 점이 자연적인 부패와는 다른 차원의,즉 인위적인 '부패'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자연적인 부패력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는데, 부패하지 않는다함은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쓰레기로 남아 지상에 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토지를 사유화함으로써 자연적인 부패의 기능, 즉 자정 능력을 소멸시켰다.  


저자는 부패로 부패에 저항한다는 모순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미 세계는 하나의 제국처럼 연결되어 있고, 농업조차 비물질적 노동으로 변화해감을 느그리와 하트를 통해 인정한다. 인터넷 테크놀로지와 그에 따른 인프라에 사용되는 여타 자재와 발전소는 부패하지 않는다. 저자는 부패하지 않는 것에 기반한 사회는 지속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생명을 지속하면서 동시에 '제국'을 사멸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에 대한 답을 '분해'에서 찾는다. 이 부분을 짚어내는 대목에서 인간이 '먹는 객체'가 아닌 '먹는 주체'가 되어야한다는 주장이 인상적이다. 먹는 주체의 과정이 물건의 생산에서 폐기까지의 과정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어 말하기를 활성화시켜야할 것은 생산 과정이 아니라 분해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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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카렐 차페크의 소설들을 짚어가며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를 비롯한 노동, 전쟁 등을 통해 분해와 재생이 약화된 인류에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얘기한다. 


카렐 차페크는 담담한 일상 속의 균열을 통해 엿보이는 이면의 세계를 꼼꼼히 묘사함으로써 인간과 세계의 임계 쪽으로 우리의 눈을 돌리게 해주는 작가라고 평가한다. 그의 작품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 노동과 생활에서 벗어나 획득할 수 있는 인간의 정신적 자유 여부, 성숙과 미성숙의 차이, 전쟁의 존재 여부, 인간과 세계의 끝 등에 대해 고찰한다.  


저자는 문학적 고찰 뒤에 인간의 육체가 자연을 향해 분해를 이룩해가는 과정이기에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그 변화에 공명하는 감각과 정신이 성장한다면서 과도하게 생산 및 파괴되는 사회에서 순환되는 것은 물질이 아닌 화폐라고 지적한다. 또한 이러한 과잉 속에서 한 번 쓰고 버림의 가속적 순환에 있어서 인간도 예외가 아님을 지적하는데, 분해되기 쉽다는 게 반드시 약하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라는 사실을 재차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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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마주이를 아는가? 
저자는 넝마주이를 일컬어 상품 세계에서 하강해온 것을 다시 상품 세계로 되돌리기까지의 사이 공간, 즉 소유권 제도의 공백 지대를 치고 들어가는 일이라고 얘기한다. 지구 역사 안에서 분해 활동자로 영위했던 넝마주이가 지구가 폐기물에 매몰당하지 않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음을, 저자는 상기시킨다.


저자는 이보다 앞서 나무블럭 부수기 놀이를 동해 자연, 인간, 사회, 역사의 흥망성쇠를 분해라는 현상으로 확장해 들여다본다. 그리고 프뢰벨의 삶과 그가 개발한 교구와 유치원 및 교육 이념을 짚어가면서 불완전성, 자기 증식을 통한 무한성과 균형, 생산과 분해, 증식과 제어에 대해 고찰한다. 그런데 읽다보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넝마주이와 나무블럭은 묘하게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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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생태학의 잠재력을 인문학의 언어로 끌어내려고 시도한다. 그는 먹이사슬과 인간의 신분제 사회를 나타내는 피라미드 구조의 서열을 같은 선상에 놓으면서 먹히는 존재, 즉 하위 계급은 폄하될 존재인지 혹은 그 반대의 질문을 던지며, '분해자'는 과연 이 서열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어떻게 정의되는지를 탐구한다.  


생물들의 '장례' 모습을 통해 생명의 재탄생과 영겁의 반복을 짚고 생산과 소비와 분배를 대입하는데, 저자는 어떤 분류 체계도 생물 군집의 역동성을 단정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얘기하며 분해의 공동 작업에서 답을 찾으면서 부패와 분해는 상호 연대적 행위임을 포착하며 보완성에 주목한다.  


수리의 미학에서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물건을 만들어 파는 생산자 혹은 판매자 조차도!). 그럼에도 사양을 (아주) 조금만 바꿔서 하루가 멀다하고 초고속으로 신제품이 출시되는 이유는 당연히 '돈' 때문이다. 더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게 최우선하는 신자유주의 경제가 장악한 세상에서 수선이나 물건에 대한 애착과 추억은 감성팔이로 치부된다.  


저자는 앞서 부끄러움에 대해 얘기했다. 낡은 것, 고쳐쓰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닌 소비의 허영이 부끄러움의 대상이라는 의식이 필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생산 시장만이 아닌 재사용 시장, 그리고 여기에 투입될 다양한 직종의 노동 시장이 활성화되어 신품과 구품이 보완성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쓰다보니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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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품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직접적인 폭력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교묘하게 우리를 통치하고 있다. 이 책은 이에 대해 생태학적으로 사유하며 더불어 신품 문화의 취약점과 수선과 분해의 측면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인간은 어떠한 위치에 있든 모두 분해의 담당자다. 그럼에도 인류는 분해 세계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발전이라고 간주하면 전진해왔다. 소위 근대화 혹은 문명화라고 불려온 것들은 대체로 분해력으로부터 이탈하는 행위였다. 우리가 대면한 작금의 사태가 그에 대한 증거다. 저자는 이제부터라도 하등하다고 여기는 동물들에게 배워야겠다는 결심이 무의미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동의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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