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소설, 잇다 1
백신애.최진영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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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그들은 나에게 아름다운 보물이 되어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을 때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방 안 장롱 속에나 선반 위에 잠겨 있는 귀한 옥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랍니다. 나는 불행히도 옥돌이 아니어요. 보물이 되기를 또한 원치 않는답니다. 나의 가림 없는 본질은 거친 창파에 씻기어가며 제대로 다듬어지는 백사장에 흩어져 있는 조약돌이 아니라면, 험악한 산꼭대기에 모나게 솟아 있어 비바람 눈보라에 저절로 다듬어지는 바윗돌이 아닌가 합니다. 그보다도, 솟으며 떨어지며 감돌며 흘러가는 계곡물에 밀려서 넓고 깊은 바닷속까지 갈 수 있는 한 조각 모래가 됨을 원한답니다.
('혼명에서' 중에서) 


참으로 비장하기 이를 데 없다. 그저 제 이름으로 살겠다는 바람이 이렇게까지 비장할 일인가.  









책에 실린 백신애 선생의 세 작품은 모두 한 번씩은 읽었기에 최진영 작가의 소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를 먼저 읽었다. 순희와 정규라는 이름에서 바로 떠올려진 작품 <아름다운 노을>. 처음 읽었을 때 1930년대 당시의 시대 정서를 고려해보면 비록 소설이라도 적잖이 파격적이라 대중들이 쉽게 용납하지 않았을 거라는, 그래서 백신애 선생이 참 용감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결혼 생활 동안 유학과 정치활동으로 대부분 부재 중이었던 남편, 유난스런 시어머니와 시누이, 가슴 졸이며 살아왔던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제법 살만해졌다고 여길 무렵 벌어진 남편의 외도. 아내가 광인이 된 까닭은 남편의 외도가 아니라 그동안의 삶을 부정당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광인수기) 


'나'는 결혼 후 전통적인 여성의 삶을 살 수 없어 이혼하고, 그것으로 주변인들은 그녀가 이혼녀란 불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방 안에서 나오지 말아야 하며, 세상의 기구한 억측에 흘러나온 갖은 비평을 일일이 변명하고 근신해야 되며, 얌전한 여인으로서의 본분을 지켜야만 한다고 강요한다. 그녀가 이러한 환경을 헤치고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실상 어머니 때문이다. 자기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을 품고 있는 어머니의 눈물이 세상의 편견에 맞설 용기를 소멸시키고, 주저앉아버린 자신에게 실망하는 그녀의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놓지 않는 그녀의 희망과 지금 우리의 희망은 맞닿아 있다.
(혼명에서) 


약 스무 살 나이 차를 뛰어넘는 사랑. 남자의 나이가 더 많을 때와 그 반대의 경우에 대중이 보내는 시선의 차이는 1930년대나 2020년대나 별반 다르지 않다. 
(아름다운 노을) 


회화를 전공하고 결혼 후 안정적인 삶을 살 줄 알았지만, 이혼한 후 우체국에서 근무하며 독립적인 생활을 하지만, 남편이나 시집 식구들만큼이나 괴롭히는 직장 상사도 모자라 성별 덕분에 먼저 승진한 남자 동기를 상사로 모셔야하는 사태까지 직면한 순희. 일주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취업은 요원하고,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에는 어디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묻지마 성폭력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정규. 그들의 이름 대신 누구의 이름을 써놓아도 어색하지 않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ㅡ 


일제강점기에 사회운동가로 활동한 여류작가 백신애. 친일 활동을 했던 가부장적인 아버지, 독립 자금을 댄 혐의로 수감생활을 했던 오빠로부터의 영향, 여성단체에서의 사회운동, 시베리에아 갔다가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감금 후 추방, 일본 유학, 늦은 결혼과 이혼, 췌장암으로 서른한 살에 요절. 넓은 스펙트럼으로 파란한 삶을 산 그녀의 작품이 관통하는 주제는 조선 민중의 고통받는 지난한 삶과 극단적인 가난, 가부장제에서 교육조차 제대로 받기 힘든 여성들이 감내해야 하는 차별과 억압된 욕구와 가혹한 편견을 통해 바라본 여성주의, 그리고 허위에 찬 엘리트주의다.  


물리적으로는 100년에 가까운 시간 차이가 있지만 백신애의 분노와 최진영의 분노에 별 차이가 없다는 최진영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이렇게 큰 시차를 둔 두 작가가 거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독자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 마치 언제는 그렇지 않았냐는듯이 당연스럽게 여기며, 그래도 나아지고 있지 않냐는 말로 불편함을 대신한다. 하지만 유선 전화기가 디지털 통신 기기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성별을 가진 이들이 여전히 사회 구조에서 보조적 소수자의 위치에 있음은 너나할 것 없이 아주 많이 놀라워해야 할 일이다. 



책의 끝에 실은 에세이에서 현대의 순희에게 직장과 가정에서 느끼는 피로감만으로 벅찰 것 같아 사랑의 혼란과 피로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는 최진영 작가의 글에 1930년대의 순희, 2020년대 순희 모두를 배려하는 마음을 읽었다. 아픔과 위로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서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모두 위무할 수 있을 때야말로 비로소 '이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홀로 달리고 있는 당신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심심하고 외로운 당신이 그 사실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순희와 정규의 마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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