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시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8
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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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악은 혈관 속에 날카로운 한 조각의 얼음을 남기고, 그것이 서서히 움직여 마침내 심장을 찌르는 것일까? 
 







지브릴이 천사의 눈으로 본 도시의 실체는, 주류자들의 지역은 두려움과 허영과 경멸의 집약체였고, 가난한 자들의 거처는 혼란과 물질적인 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썩은 영혼이 도사리고 있고, 도시는 온통 거짓 뿐이다.  


지브릴은 도시에 자리잡은 완강한 악의 힘을 실감하고 널리 선을 펼치겠다고 결심하며 부패한 도시를 차례대로 구원하리라 마음 먹지만, 그의 예상만큼 순조롭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외모와 입성이 노숙자 몰골이 되어가는 지브릴. 악은 천사에게 순종하지 않았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지브릴 앞에 나타난 사나이 바알은 지브릴을 마훈드라고 부르며 질문을 던진다. '너는 어떤 존재인가?'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든 타협하고 거래하고 순응하며 살아남으려 하는가, 아니면 휘어지느니 부러지는 쪽을 택하겠는가. 지브릴은 이 질문 자체가 속임수라고, 신 이외의 신은 없으니 타협 따위는 없다고 단언하며 자신이 하나의 시험을 이겨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지브릴이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한 이들이 레카, 알리 등 여성이라는 점이고,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비행 능력을 되찾는다. 소설에서는 성적 욕망에 대해 지속적으로 언급하는데, 이것을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ㅡ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쇠퇴한 자힐리아에서 절대적 군주이자 폭군으로 군림하는 힌드의 모습은 마치 가난한 백성의 삶에는 무관심하며 여성을 비롯한 약자를 억압하고, 왜곡시킨 '신의 이름'을 이용해 사람들을 세뇌시키며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을 겨냥한 듯 보인다. 힌드는 여성인데, 1권에서 이맘이 망명지에서도 혁명군이라 일컫는 반정부 세력을 주도하는 장면에서 특이한 점은 이맘의 고국을 통치하며 종교적.정치적 지도자인 그를 추방한 사람은 여왕 아예샤다. 이맘은 아예샤를 폭군이자 부도덕한 자로 단정한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  


마훈드와 지브릴은 동일시된다. 마훈드는 율법에 집착하는데, 섭생과 용변, 가려워도 절대 긁으면 안 되는 신체 부위 등 인간의 일생 전반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있어서 아주 사소한 것까지 규정이 따른다. 페르시아인 이민자이자 마훈드의 제자 살만은 도무지 이를 납득하지 못한다. 도대체 인간에게 평화를 안겨주어야 할 신이 요구와 조건이 이렇게 많다니, 그는 마훈드에 대한 믿음을 잃는다. 이 대목에서 결정적인 부분은 마훈드가 지브릴에게서 먼저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마훈드가 먼저 율법을 정해버렸고 천사는 나중에 나타나 이를 확인해 준다는 대목이다. 즉, 신성한 말씀은 신(대천사)의 계시가 아닌 마훈드 개인의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살만이 마훈드와 결별하게 된 이유는 여자 문제와 '악마의 시' 때문이었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들이 못마땅해 율법을 통해 여성들을 순종과 복종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고, 마훈드가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내용도 한마디로 제 뜻대로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부유한 아내의 경제적 능력 덕을 톡톡히 본 예언자가 왜 여성을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시켰을까를 따져본다면 루슈디의 의문은 타당하지 않을까. 작가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이러한 지적들은 이슬람교도들을 충분히 자극시킬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살만의 대사는 마치 작가 자신의 미래를 예견한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 장章에서 바알을 통해 여성이 수동적으로 변해과는 과정을 서술한 부분도 꽤 흥미롭다. 


"어째서 그가 자네를 죽일 거라고 확신하지?"
"그의 '말씀'이 옳으냐 내 말이 옳으냐하는 상황이니까." 


ㅡ 


어쩌면 살만 루슈디는 이슬람교와 코란이 아닌 이를 왜곡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그릇된 관습을 만들어간 사람들을 비판했던 건 아닐런지. 지브릴은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신앙을 잃었다. 자신이 그동안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해서 죄책감도 없는 그는 자신이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죽을 뻔 했다는 사실에 분노해 신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었다. 신이 있음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대립과 반목하고, 그로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 것을 얘기한 건 아닌가싶기도 하고.  


지니는 자신의 정체성을 강하게 부정하고 폄하하는 살라딘에게 처음부터 죽어있었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충고한다. 소설은 수피안 가족을 통해 인종주의와 이민자의 상실감에 대해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는데, 이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살라딘의 선택과 같은 선상에 있다.  


ㅡ 


소설에서 뱀이 낙원에서 쫓겨난 이유는 '질문' 때문이다. 악은, 고통은, 죽음은 왜 있는지, 그럼으로써 신을 판단해서 쫓겨났다. 결국 천사든, 악마든 순종을 강요한다. 천사들조차 동료와 구원받아야할 영혼을 조롱하고 질투하고 비웃으며, 권력과 계급의 욕망에 의해 타락한다. 이 정도면 천사와 악마를 구분하는 경계는 무엇일까? 살라딘의 깨달음처럼 나쁜 짓을 하고도 벌을 받지 않는 자들이 악마일까? 


신은 모든 것을 알아서 한다고 했지만, 인간들은 대천사의 존재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인간 이외의 생명체를 향해 온갖 폭력을 휘두르며 지상의 주인이 되었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 보자. 과연 인간 세계에서 신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가? 


루슈디는 살라딘을 통해 지브릴이 출연했던 영화와 그들이 경험했던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몽상에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현실은 종교와 이념을 가리지 않고 악마가 판을 치는 지옥같은 세상임을 얘기한다. 타고난 계급으로 특정 신분을 억압하고, 서로 다른 종교와 민족을 겨냥해 학살을 일삼으며, 인종과 여성과 이민자를 차별하는 사회 등 점점 선과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잔혹성을 더해가는 세태를 신랄하게 파헤치며 겨냥한다.  


과연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마술 램프는 무엇일까? 진부하게도 서로에 대한 사랑, 그리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죽음이 참혹한 비극이 아닌 다음 세대의 새로운 삶을 환하게 비추는 빛이 되어줄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이 긴 이야기를 통해 루슈디가 하고자했던 말이 아닐까. 


길고 긴 한 편의 익살극 같은 이 소설의 완벽한 반전은 제9부에서 드러난다. 읽다보면 다소 난해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일단 읽으시라. 완독하는 순간 그 난해함은 해결된다. 










144.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야. 그러니까 전문적인 거짓말쟁이는 돈을 잘 벌기 마련이지. 내가 쓴 연애편지나 업무용 통신문은 시내에서 최고라는 명성을 얻었는데, 그건 진실을 아주 조금만 왜곡시켜 멋진 거짓말을 꾸며내는 재간 덕분이지. 그래서 겨우 이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를 마련했어. 고향! 그리운 조국 땅! 내일 출발할 거야. 그동안 참 용케도 버텼지." 


177.
"악마는 왜 찾아, 인간이 곧 악마인데?"
"천사는 왜 찾아, 인간도 천사를 닮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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