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의 장미 -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
리베카 솔닛 지음, 최애리 옮김 / 반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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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에게 단 하나뿐인 이 지상에서의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조지 오웰) 



오웰의 삶(가계를 포함한)의 궤적과 그의 문학 작품 및 비문학 글들을 관통하면서 동시에 전쟁, 정치, 이념, 사조, 자유, 산업, 환경, 오염, 기후, 노동, 여성, 인권, 예술, 문화, 생물, 과학, 농업, 식민주의 그리고 문학 등 근대를 지나 1900년대 초중반, '오웰의 시대'의 전반적인 사회 구조를 탐구한다. 스페인 내전을 비롯해 스탈린 독재에 대한 비판은 현재 스탈린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러시아의 권위주의적 지도자에게까지 이어지며 신자유주의 시대에 나타나는 전체주의와 여성 노동, 새롭게 대두되는 산업 식민까지 짚어내려간다.   










조지 오웰의 삶은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보어전쟁 직후에 태어나 사춘기에 제1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20대에는 러시아 혁명과 아일랜드 독립전쟁, 30대 이후에는 스페인내전에 참전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 동안 런던에 살았으며, 1945년에는 '냉전'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다. 1950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의 삶은 세상에 존재하는 극악한 위협과 대립을 관통했다. 


오웰은 버마 주재 대영제국 경찰로 5년간 복무한 경험을 통해 하류 지향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는 소년 시절의 자신에 대해 "나는 속물이자 혁명가였다. 모든 권위에 반기를 들었다.(...) 나는 막연히 사회주의자를 자처했다. 하지만 나는 사회주의가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고, 노동계급도 인간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오웰의 고백은 소설 <엽란을 날려라>에 잘 드러난다.  


거의 평생동안 오웰을 괴롭혔던 호흡기 질환은 오히려 그에게 삶을 더 열심히 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언제든 죽을 수 있음을, 그리고 생각보다 죽음이 가까운 데에 있음을 상기했을 때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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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은 '나무를 심는 것, 특히 오래가는 단단한 나무를 심는 것'은 큰 수고와 비용을 들이지 않고 후세에 해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자신의 에세이에 썼다. 그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으로써 당장의 사회 변화를 넘어 후대에 미칠 영향까지 확장해 말하고 있다. 여기에 솔닛은 씨앗이 인류를 비롯한 많은 다른 종들의 주된 먹이이자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를 발달 시켰음을 상기시키며, 조지 오웰이 장미를 심는 것으로 두 가지의 시간을 살았듯, 인간 대부분이 마찬가지임을 말한다. 정치적 행위자로서, 시민으로서, 개별적 정신의 소유자로서, 또한 동시에 생육하는 생물학적 독립체로서 필멸의 존재로 살아가고 있음을. 


솔닛은 이 책에서 오웰이 열정적인 자연애호가였음을 얘기하는데, 도시가 아닌 시골 생활을 하면서 나무와 꽃을 심고, 닭을 키우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살펴보면 평소 우리가 접했던 오웰을 떠올려볼때 상당히 의외의 면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솔닛의 지적을 따라가다보면 독자가 자칫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을 짚어낸다. 오웰에게 있어 일기에 써내려간 기록은 문학적 가치나 감정적.창조적 삶의 기록이 아닌 단지 노동과 작업 계획을 담고 있을 뿐이라는 것. 그렇지만 글 쓰는 본업 외에 가장 좋아했다던 정원과 텃밭 가꾸기, 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애정은 오롯이 전해진다. 



비정치적인 문학은 없으며, 모든 예술은 어느 정도 프로파간다라고 말한 것처럼 오웰은 인간 사회에서 정치는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지만, 예술이나 예술가가 특정 정당이나 국가의 의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반대했다. 하지만 의제에는 미학적 경험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솔닛은 오웰이 글을 쓰는 것으로써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평등과 민주주의, 언어의 명확성과 의도의 정직성, 사생활과 그 모든 즐거움과 기쁨, 정치적 자유와 침범받지 않는 프라이버시, 즉각적 경험의 즐검움이라고 말한다. 그의 암울한 글에도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문득 삶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든다.  


오웰의 시대에는 자연 세계가 사회적 및 정치적인 것과는 연관이 없거나 혹은 경우에 따라 하찮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오웰은 모든 예술이 프로파간다이듯 자연도 예외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의 주장을 증명하듯 현재 기후 위기는 그 자체로써 논의되기보다는 경제적 측면과 맞출린 정치적 싸움이라고 할수 있다. 더하여 이는 또 다른 식민주의의 양태를 보여준다. 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장미(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잠깐 벗어나서, 오웰의 가계를 되짚어 올라가 보면 그는 제국의 하수인이자 제국주의 사업에서 혜택을 누렸던 식민자의 후손이다. 자신의 집안 내력과 성을 혐오해 필명으로 바꾼 점이나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식민주의에 대한 맹렬한 비판이 납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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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닛은 오웰이 어떠한 암울한 상황에서도 아름다움을 칭송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극단의 절망적인 소설 <1984>에서 조차도 말이다. 어쩌면 오웰은 가장 냉철한 시선과 문장으로 글을 쓰지만 종단에는 아름다움을 추구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정치든 예술이든 문화든 간에. 


솔닛의 시선에서 오웰이 장미를 심는 것은 자신의 사상에 뿌리를 내리는 것과 다름하지 않다. 이는 양날의 칼과도 같아서 관념과 자유에서 온전히 하나를 털어낼 수 없는 보편적 딜레마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솔닛은 형식은 기능과 분리되지 않으며, 아름다움 또는 추악함이란 그저 외관보다는 그 의미, 영향, 함의 등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만연한 전일성integrity의 결여를 짚는다. 


솔닛은 책을 마치면서 우리가 오웰이 이룩한 성과를 더욱 심오하게 만드는 길은 그가 소중히 여기고 욕망했던 것들이 전체주의의 국가의 영혼을 파괴하는 침식력에 반대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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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전반에 걸쳐 장미는 인간의 존재와 욕구가 재화 및 여건 등의 물리적으로 환원되는 것에 그치지 않음을 상징한다. 속된 말로 인간은 밥만 먹고는 살 수 없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욕망들을 내재하고 있는며 훨씬 더 심오하고 섬세한 존재라는 것. 나무와 장미를 심고 정원을 가꾸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산업적 행위가 아닌)는 단순하지 않다. 이는 우리의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는 행위이면서 미래에 기여한다.  


이 책에 실린 오웰의 일기를 사이사이 읽다보면 그가 식물을 관찰하는 시선에서 섬세함과 다정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아내 아일린의 무덤을 돌아보러 갔을 때 쓴 일기에서는 무덤의 주변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잘 살아나기를 바람하는 그의 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전체주의 혹은 강대국의 이기주의에 위협받는 인류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나무들은 인간의 영욕의 삶을 모두 지켜보며 훨씬 더 긴 시간동안 살아남는다. 세대를 이어 함께 살아갈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미래를 맞이할지는 결국 우리 각각의 사람들이 할 일임을, 솔닛은 말하고 있다.   




※ 출판사 지원도서 _ 솔닛 북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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