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문법 (2023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 부유한 나라의 가난한 정부, 가난한 국민
김용익.이창곤.김태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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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복지에 관련해 사회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국가의 역할, 해결해야 할 난제, 해결 방안에 대한 제안,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적자 확대' 및 '기금 고갈'에 대한 진실과 오해 등 우리나라 복지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동시에 복지 제도가 근본적이므로 재설계가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복지는 곧 낭비'라는 인식을 벗어나 한국형 복지국가의 전환 로드맵과 이에 따른 세부 실현 및 조직 구축 전략도 함께 제시한다.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가 이십일 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으며 일시적인 경기 침체를 넘어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2020년부터의 팬데믹과 여러 국제 정세가 맞물려 세계가 불안정한 상황이다. 산업 개발이 시작되면서부터 성장지상주의의 가파른 고성장은 불평등과 양극화를 양산했고, 현재는 이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또한 산업 혁명 이후 기후 및 생태 위기 역시 산업성장지상주의에 의한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현 정부가 이와는 정반대로 정책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 더하여 난제일수록 공론화해 시민의 의견과 판단을 경청해야함에도 소통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형 복지국가' 설계를 위해 넘어야 할 3대 난제는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다. 저자는 생산기능인구 감소의 해결으로 노인, 여성, 장애인, 청년 등의 경제사회 참여를 늘려 '실질적' 생산가능인구를 늘리자는 제안을 한다.  


고용 시장에서 소외된 사람이 복지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사회보장제도가 불평등을 개선하기는 커녕 심화시키는 역작용을 하게 된다. 이른바 '복지의 역설', '분배의 역설'이다. 사회보장제도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관건은 해당되는 사람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 '가입의 보편성'이 중요하다. 한국은 민간 공급에 강하게 의지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보장제도의 문제점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문에도 나와있듯 우리가 막연하게 인식했던 국가와 정부, 국민의 삶의 현주소에 대한 원인과 배경을 짚어감으로써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개선해야하는 것들을 인지하면서 동시에 함께 고민해야할 것이다. 


저자는 그동안 정권이 바뀌면서 각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이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에 있다고 지적한다. 개혁은 국민과의 소통을 전제로 해야 하는 쉽지 않고 지난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문제점를 뻔히 알고 해결 방안이 있음에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안 좋은 일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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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반적으로 진보 정당이 발전해야 복지국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복지 제도를 되짚어봤을 때 이를 이룩한 정당은 대체로 보수당이다. 독일의 비스마르크, 일본의 자민당, 한국의 경우 의료보험을 최초로 도입한 대통령은 박정희다. 하지만 여기에서 또 짚고 넘어야가야 할 부분은 보수에 대척하는 사회주의 노동운동과 진보당의 견제, 강력한 여론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또한 정당이 바뀌어도 기존의 제도를 뒤집지 않고 진일보 발전시키는 '정당의 시대정신'이다. 한국은 이러한 정당 정치가 부재하다. 


능력없는 관료들이 집권당을 주도하는 구조에서는 어느 정당이 집권을 해도 정책은 변하지 않으며, 박정희 모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정당 제도의 미성숙에서 기인한다. 생각해보면 현 시점에서 백년 전 정책을 기본적으로 따르고 있으니 21세기 국가 비전을 떠들고 있지만 결국 허울 뿐이며, 1970년대의 향수를 벗어나지 못한 정부에게 우리의 삶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이에 저자는 우리나라 정당 제도의 문제점을 정책 기능의 취약함으로 꼽는다. 청년 인재 육성이 전무하다보니 정책을 만들고 키우는 능력이 없어 급할 때마다 외부인사를 끌어들이기에 급급하며 관료에 의존하는 안이한 편법을 쓰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당의 방향성은 온데간데 없다(지금 정권이 대변하고 있지 않은가).   



정치 선진국을 보면 이미 십대부터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해 간접적으로 정치를 경험하고,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진로에 반영 및 확장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 과정을 보면 정치의 기본 개념과 이론만 설명하고, 그보다 나은 경우는 학생자치에서 선거를 치를 때 이를 실행해보는 체험 수준에 그친다. 고등학생이 정당에 가입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조차 불편해한다. 그런데 이게 과연 교육청이나 학교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일단 기존의 정치인들이 젊은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생각해보면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저자는 청년들이 젊은 시절부터 당에 들어와서 정치 훈련을 받고, 당의 이념을 충분히 인지해 중견 정치가로 성장했을 때 정당 제도가 진짜 발전하는 것이고, 따라서 기본적으로 당이 능력을 키우고, 관료 의존에서 벗어나 실력과 인재의 풀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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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한 독서 모임에서 복지에 관련해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분이 나에게 대놓고 질문했다. 당신은 복지 때문에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라면 내겠냐고. 민간 보험회사에 연금, 건강, 암, 재해, 실손 등의 보험을 가입하지 않고도 나의 안전과 노후가 보장된다면, 교육 복지를 통해 모든 아이들이 입시와 더 나아가 취업 및 임금 구조의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세금을 내겠다고 대답했다. 노인의 고독사, 입시와 취업 실패로 인한 자살 뉴스에 흘리는 눈물은 말라버리면 그만이다. 연민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행동이 동반하지 않는 연민은 그때 뿐이지 않은가. 물론 이전에 시민의식의 개혁이 동반해야 할 것이다. 누구의 말처럼 직장인이 세금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세금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투명하고 공정하게 실행할 정부가 필요하다.  


사회보장제도 하나하나를 바꾸기보다 통합적으로 개선해야 하고, 계층별, 집단별, 연령별로 통합적 재설계를 해야하며, 제도 개선과 더불어 인프라 개혁도 동반되어야 한다. 정책 역량이 없으면 정치적 역량도 없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 복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사실적 근거를 토대로 구체적이고 촘촘하고 면밀하게 쓰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던 복지에 대한 오해와 증세에 대한 편견, 정책적인 부분에서의 오류와 개선 방향, 지향해야할 점들까지 자세히 나타내고 있다. 물론 책을 읽은 후 판단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국가의 복지와 무관하게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보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제발 복지가 낭비라는 인식만이라도 개선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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