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국내 최초 스페인어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6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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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이후 유럽 사상가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일컬어지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저서다. 읽는 입장에 따라 잠언집이 될 수 있고, 처세술 혹은 자기계발서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손자병법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일단 소제목만 읽으면 낭패다. 한두가지 예를 들어 보면, 적절한 거절을 권유하는 부분에서 핵심은 거절이 아닌 거절까지 가는 과정이다. 여차하면 예전에 광고에서 봤던 것처럼 '남들이 Yes라고 할 때 No'라고 외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과하지 않게 간교를 이용하라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정당당하게 싸우라고 한다. 또한 앞에서는 자기만족은 금물이랬다가 뒤에서는 자신에게 만족하라고 한다. 본문과 행간을 읽지 않으면 제 입맛대로 해석할 수 있으니 꼼꼼하게 읽고 생각의 시간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  







 
'삐뚤어질테다!'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딴지를 걸어본다.
결점을 남기지 말고, 결점을 멋진 장식으로 바꿀 줄 아는 것은 최고의 기술이라고 말하면서 이에 대해 카이사르를 예로 드는데,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천재다. 천재와 같아지기는 너무 어렵다. 그리고 어렵고 위험한 일은 해결할 생각을 말고 아예 처음부터 피하라고 한다. 어리석은 일에 관여하지 않는게 상책이라는 건데, 피하고 싶은 일을 피할 수 없는 게 우리의 딜레마 아니던가.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수단보다 결과가 훨씬 중요하다고 단언한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규칙을 어기는 것이 또다른 기술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거기다 칭찬받을 만한 일을 선택하란다. 중요도나 가치의 척도보다는 대중의 박수 갈채를 받을 수 있는 일을 선택하라는 것.  


이 정도만 써도 당황스러울 독자가 있겠지만, 저자가 살았던 17세기 스페인 상황을 고려하면 그의 가르침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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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이고 수도자이자 설교자이며 인문학 교수였던 저자의 가르침인만큼 그의 지혜와 혜안은 눈과 가슴에 담아둘 가치가 있다.  



나의 입장에서 와닿았던 몇 가지들은,  


첫번째는 침묵의 중요성이다. 침묵을 통해 말의 힘을 축적하라는 조언은 경청과 같은 선상에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듣기의 중요함을 새록새록 느끼고 있다.  


두번째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일이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분리해낼 수 있어야 하고, 적당한 거리를 둔 관계가 더 오래 간다는 데에 공감한다.  


세번째는 감정에 휘둘리지 말기. 저자는 인간의 삶은 인간의 교활함과 맞서 싸우는 한 편의 전쟁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숱한 일상의 부침에서마다 감정을 소모한다면 얼마나 피폐해지겠나.  


네번째,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어라. 내가 제일 못하는 점이다. 누가 나한테 호의를 베푸는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다보니 의식적으로 호의를 베풀려고 노력하지 않는 편이다. 이로 인해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었지만, 나와는 다르게 선뜻 호의를 베푸는 사람을 보면 예뻐보이고 부러웠더랬다. 호감은 행운으로 시작해서 노력으로 이어진다. 호의를 얻으려면 먼저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 선한 행동과 말을 하고, 더 좋은 행동을 해야 한다. 옳은 말씀이다.  


다섯번째, 이 책에서 나에게 금과옥조는 너무 많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 원하는 걸 얻으려면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라는 것이었다. 워낙 생각이 많고 오래하다보니 부작용이 적지 않다. 


마지막으로 내면의 깊이를 채워라.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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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맞출 줄 알라'는 문구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말은 적당히 눈치가 있어야한다기보다는 그야말로 지혜, 지식, 안목, 인내심, 언변, 절제, 현명함 등 이 책에서 언급했던 거의 대부분의 덕목을 갖춰야만 가능할 일이다. 사람을 얻는 것도, 타인과의 원만한 교류도 참 어려운 일이다. 



읽을수록 느껴지는 점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귀한 가치는 성실과 책임감, 그리고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 즉 양극단 사이에 있기에 둘 다 경험하게 된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고, 하나의 길로만 가기도 어렵다. 그저 삶을 적절히 분배할 줄 아는 현명함이 필요할 따름이다.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정념'인데,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과 분별력을 흐리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짚는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함은 신중한 자기 성찰을 통한 타인과의 조화로운 관계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그리고 나의 머리를 울렸던 질문 하나, '불행을 함께 짊어질 사람이 있는가?'



인내심을 갖고 자부심을 잃지 않으며 시간을 들여 준비하고 신중함으로 기다릴 줄 아는 사람, 마무리를 잘 하는 사람, 끝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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