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러닝
이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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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우리가 타인에게 얻고 싶은 건 어쩌면 진심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무조건적 온정이 아닐까.  



여덟 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오래 전에 집을 나간 아빠가 자기의 학창 시절 사진을 보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입사 원서 사진에 집착하는 여자, 죽은 약혼자가 너무 보고 싶어서 매일 팔을 잘라 골짜기 한쪽에 모아두는 잔느, 아버지가 죽자 유산을 정리하기 위해 십 년 전에 집을 떠난 언니를 찾아가는 여자, 애인에게 전화 한 통으로 이별을 통보받은 남자와 동생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기가 망가져 망연자실한 남자, 가족의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 뉴욕에서 거지로 살망정 한국에는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말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데 서슴치 않는 준 리 등 이외에도 결핍과 상실을 안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인류가 지속되는 한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 중 하나가 사랑이 아닐까 싶다. 사랑이 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사랑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각자의 입장에서 셀 수 없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우리가 무슨 재주로 사랑을 정의하고 결과를 내놓을 수 있겠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기대고 의지할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런지. 타인의 숨소리가 위안이 될 만큼(나는 이게 어떤 마음인지 너무 잘 알겠더라) 삶은 외롭고 고독하다. 세상살이는 어차피 누군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고, 그로인해 너나할 것 없이 서로서로 민폐를 끼치는 것.  


ㅡ 


이상과 현실.
상실과 자책.
결핍과 소멸.
반성과 속죄.  


여기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언덕이 모두 무덤인 도시에서 밤마다 언덕을 뛰어다니는 드리(나이트 러닝)처럼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딛고 삶을 연명한다. 때로는 자유로움을 느끼지만 얼마 못있어 한계를 깨닫고, 때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쪼개진다. 어느 순간부터는 적응인지 체념인지 모호한 상태에 접어들곤 한다. 적응과 체념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을까.


보여지는 게 전부가 아닌 세상에서 속단은 금물. 무엇을 이뤘든 이루지 못했든 삶은 계속되고, 미래는 과거를 기준으로 장담할 수 없다. 다만 각자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안고 가야할 중력의 무게가 있을 뿐이다.   



이 책의 출간일이 10월 24일. 얼마 전 참사를 염두에 두고 썼을 리는 없건만, 작품 중 <우리가 소멸하는 법>은 이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반성과 속죄는 다르다는 유구의 말이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건 애도와 기도 뿐만이 아니라 함께 슬퍼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소설의 정황상 꽤 감정이 격해질 수 있음에도 담담하고 건조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사이사이의 유머가 오히려 씁쓸하게 전해진다. 마지막에 실린 <에덴 ㅡ 두 묶음 사람>의 화자가 옥상에 방수용 페인트로 도색하겠다는 다짐에 안심이 된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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