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할 권리 - 우리는 어디쯤에 있는가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효형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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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그들은 말하지 않을 것이다. 시대는 어두웠다고.
하지만 당신들은 왜 침묵했습니까?
(베르톨트 브레히트)  



쿠오드리베트 웹사이트에 올라온 조르조 아감벤의 글들을 엮은 책으로 이탈리아에서도 출간되지 않은 글들이다. 전작인 <얼굴 없는 인간>을 먼저 읽었어야 하는데, 지금의 담론에 대한 비판을 읽고 싶어서 <저항할 권리>를 우선 펼쳤다.   


책의 시작에서 저자와 역자가 주고받은 서한과 편집자주는 서문을 대신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편집자가, '인류가 모두 레밍이 되어 절벽을 향하고 있'다는 표현은 지난 만 2년 동안 우리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에 관련한 내용은 본문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저자는 팬데믹 사태를 전쟁에 비유하는 각국 정부가 국민의 자유를 강도 높게 제한하는 예외상태를 정당화하고 있는데, 이로써 권력과 전쟁 간의 유대 관계는 더욱 긴밀하고 실질적이 됐음을, 이는 과거 역사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우리가 '정상 상태'에서 추구했던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단순히 이 제재가 삶을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식이라고 믿게 될 것임을 짚는다.  


그는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잠정적 환자가 되고, 마치 종교가 세상을 지배했던 시대의 세례처럼 백신 접종자에게만 정체성이 부여되는 사태를 심각하게 우려한다. 왜냐하면 이 정체성조차 어떠한 결정권 없이, 결정을 강요받고 실행해야하는 의무만 남기 때문이다. 또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사회적 활동에서 배제해 시민들 간 차별을 조장하는 역할을 하는 것과 동시에 졸지에 감시자 입장으로 만들어버린다.  


얼굴은 인간이 교류하는 모든 것의 바탕으로서 자신을 개방하고 타인을 인식하기에 정치적 요건이 된다. 그런데 모든 장소에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림으로써 국가는 자발적으로 모든 정치적 차원을 지워버렸다고 얘기하는 저자. 이는 정치적 동물인 인간의 생명 상실을 의미하고, 죽음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님을 짚는다(지난 2년 동안 코로나 사망자와 유가족들에게는 애도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음을 떠올려 보라). 얼굴을 지우고 죽은 자들을 흔적없이 제거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조장하는 것은 독재에 가까운 통치체제를 위한 필수 장치다. 모든 것을 지우고 접촉도 없는 사회는 그야말로 유령 사회일 뿐임을, 또한 민주주의 퇴보를 넘어 야만적 행위임을, 저자는 일갈한다.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도입된 [그린 패스(우리나라의 접종 확인증과 같다)]가 시민들의 이동에 대한 세밀하고 무제한적 통제라고 비판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접종 확인증보다 한때 확진자 동선을 공개했던 일이 떠올랐다. 지금은 개인 정보 노출과 인권에 반한다는 항의로 사라졌지만, 개인 사찰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시민의 자유를 크게 훼손한다는 점에서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정부가 작정하면 얼마든지 국민을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어서 씁쓸하기 이를 데 없었다.   


2021년 10월, 조르조 아감벤이 이탈리아 상원 헌법위원회에서 그린 패스와 관련해 연설한 내용을 보면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차별은 팬데믹 자체보다 더 비정상적임을 지적하면서 그에 대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도 책임을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정부를 비판한다(대부분 모든 국가들의 공통적으로 해당된다). 이 연설의 핵심은 백신의 '의학적' 문제가 아닌 그린 패스의 '정치적' 문제에 대한 언급이다. 접종자와 미접종자를 구분한 새로운 시민 계급의 형성 및 시민의 이동 제한과 동선 추적을 통해 통제 사회로의 진입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얘기한다. 


다양한 의견의 제시 및 수렴, 극단적 이견이 마주할 수 없는 사회야말로 전체주의에 근접한다. 정부 체제에 저항하는, 혹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배제함으로써 우리도 모르는 사이 유사 전체주의의 길로 들어서는 건 아닌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반론을 제기할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반론에 대한 명분 중 대부분은 아마도 공공의 이익과 다수자 보호에 있지 않을까 싶다(저자가 말한 보건 공포). 저자의 의견에 대체로 동의 공감하는 나조차도 한두 가지 쯤은 고민이 된다. 그럼에도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유는 종식에 가까운 팬데믹에 대한 반추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권력자들에 의해 언제든지, 얼마든지 정치적 프레임을 통해 법질서의 기본 원칙이 무너지고,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할 수 있음을 각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탁월한 명령 수행자로 전락하게 될지의 여부는 우리에게 달렸다. 이 책을 팬데믹 시대에 국한해서 읽지 않기를 바란다.    




사족. 
1. 저자가 발췌한, 시몬 베유가 1940년에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독재에 대해 쓴 글은 팬데믹 시대를 맞은 우리의 모습과 놀랍도록 아주 흡사하다.
2. 책의 마지막에 교사 알렉산드로 라 포르테차가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이 인상적이다. 그린 패스의 차별을 받아들인다면 종교, 민족, 피부색, 성적 취향 역시 차별의 도구가 될 것이기에, 그렇다면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가르칠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는 그의 말이 뭉클하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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