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조 히데키와 제2차 세계대전 - 일본을 패망으로 몰고 간 한 우익 지도자의 초상
호사카 마사야스 지음, 정선태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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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우리들은 인격人格이다. 하지만 폐하는 신격神格이다."



이 한마디에 도조 히데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도조 히데키의 평전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청일전쟁 무렵부터 일본의 대외 정책과 국내 정치적 상황을 함께 짚으며 그들이 왜 독일에 영향을 받았고, 무엇 때문에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내부 사정과 대외 차원의 대처 뒤에 숨은 이면들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얘기한다.   









20세기 초 일본의 육군은 천황과 밀착해 국방 방침의 구체적인 안을 일방적으로 결정했고, 정치와 외교 책임자에게는 사후 승인을 구했다. 이는 육군이 정치를 능가할 수 있다고 여기게 했고, 이후 육군의 정치 개입은 명백해졌다. 1930년대 육군이 일본 내에서 주장하는 바는 거국일치내각, 즉 정당정치의 배격이었다.   



미드웨이 해전 및 과달카날 전투 패배를 기점으로 전황이 악화되면서 정계 및 여론이 흉흉해지며 도조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급기야 언론탄압까지 하는 도조.  전세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임에도 도조는 여전히 전쟁은 정신과 의지의 싸움이니 일본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정신론만 되풀이했다. 더하여 총리라는 자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신은 군인이기에 외교는 전혀 모른다고 공공연히 발언한다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지,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미국이 요구하는 전범 리스트에 도조의 이름이 맨 위에 올랐다. 다각도로 압박을 느낀 도조는 자결을 결심한 듯 하다. 그러나 육군성과 참모본부의 요직에 있는 자들은 군사재판에서 전쟁 책임의 소재를 추궁할테고, 천황을 면책하기 위해서는 도조가 필요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도조의 자결 미수는 다행이었고, 그는 마지막까지 영웅심으로 채워진 꼭두각시였다. 본인은 충성심과 책임감이라고 항변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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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조 히데키 인생의 전환점은 만주 부임이고, 태평양 전쟁의 방점은 그해 가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가 만주로 가기를 거부하고 제대했다면, 그리고 고노에 수상의 주장을 따랐다면 전쟁사는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인생을 따라가본 결과 그는 한 시대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여러 의미에서 특출났다거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보여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군대 조직에 맞게 아주 잘 다듬어진 군인이자 부속품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그저 그가 거기에 있었을 뿐, 누가 있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하여 도조는 천황 외에는 받드는 이념이나 사상이 없었다. 그가 전쟁을 주장했던 까닭 역시 그가 일본의 승리를 확신하고 실리를 추구해서라기보다 그가 군인이었기 때문이고, 육군성이 전쟁을 원했기 때문이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고노에가 태평양 전쟁 발발 직전에 도조에게 중국 철병을 간청했지만, 도조는 그의 요구를 일축했다. 퇴각은 항복과 같고 군인에게 있어서 항복은 있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런 사람이 정치를 했으니. 


돌이켜보면 도조는 무엇을 스스로 결정하기보다는 조직과 시류에 맞춰, 혹은 누군가의 설득에 의해 떠밀린 바가 더 크지 않았나싶다. 더구나 그에게는 정치적 식견이나 세상을 넓은 범위로 꿰뚫는 혜안이 없었다. 적어도 도조가 육군상이 되었을 무렵부터 그는 육군성의 우수한 장기말이자 천황과 군국주의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의 잘못은 과잉된 자아에 도취해 깜냥도 되지 않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진주만 공습 직전, 루스벨트가 천황에게 보낸 전보가 조금 일찍 전달됐다면 일미전쟁은 피할 수 있었겠느냐는 질문에 저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나 또한 당시 일본의 지도자 중 정치적.외교적 혜안을 갖춘 인물이 있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더구나 오로지 명령에 죽고 살며 타협을 불명예라고 여기는 군사 정권이 들어선 마당에,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개전을 원하는 그들이 과연 외교적 수완이 발휘됐을까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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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조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천황'이라는 신을 모시는 사이비종교 교주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어디에서, 어떤 상황이든 기승전'정신력' 이고, 일본의 정신 계승자는 오로지 육군뿐이라는, 그래서 그대로 뒀다가는 전 국민을 육군으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읽으면서 새록새록 깨닫는 바는 일본 자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균형감각이 결여된, 편협한 군인정신으로만 무장된 군국주의자 한 사람에 국한하지 않은 듯 하다. 소위 '대동아공영권'을 '육군 정신'으로 재편하려했던 그들의 야욕은 어쩌면 시작부터 어불성설이었을 터다.  


다른 또 하나는 일본이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안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극동국제군사재판 과정을 읽다보면 회부된 인물들 뿐만 아니라 언론을 비롯한 각계 각층이 거의 대부분 약속한 것마냥 일본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도조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 항복한 것 뿐 다른 전쟁은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도조 자신조차 제대로 몰랐던 난징학살을 비롯한 잔인하고 반인륜적인 사건을 법정에서 듣고도 죄의식 없이 여전히 서구에 대한 동아시아 해방에 앞장섰다며 자랑스레 떠들어대는 그(들)의 모습을 읽으면서 사죄는 거의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에 패해 삼천 년 역사를 더립힌 것이 황공하고 이는 오로지 개전 당시 최고책임자였던 '나'의 책임이라는 말만 강조하는 도조의 모습을 보면서 착각과 오만이 뒤섞인 그에 대한 답답함과 안타까움으로 꽤 한참 씁쓸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은 오로지 천황만을 면책시키고자 했던 그들의 일심처럼, 현재 일본인들에게 천황은 그때와 같은 의미일까. 더불어 일본에서 아직도 극우의 세가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까닭을 잠작할 수 있었다. 저자조차도 자신의 세대에서는 도조의 공과 죄를 공개적으로 묻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나는 교수형을 앞두고 도조가 종교에 심취해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하는 것도 불편하다. 인생의 절정을 맛봤고, 일가를 꾸려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은 채 자손을 남겼다. 인생무상을 깨달았고 마지막 순간에 종교를 믿게 됐으니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 이것이 A급 전범의 마지막 소회라니. 그 어디에도 죄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사죄는 전쟁 패배에 대한 일본 국민에게 향하고 있었고, 마지막 순간은 너무나 평온했다. 나야말로 그의 마지막을 접하면서 화가날 만큼 허탈하기 그지없다. 그를 죽이지 말았어야 했다. 죽음으로써 그는 석방됐다.


교수형이 선고된 이후 전범들을 '순교자'라고 표현한 것도 어처구니가 없고, 법정의 판사들이 도조를 '희생양'이라고 표현하며 전승국의 도량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글쎄 과연 그가 희생양인지는 의문이다. 물론 일본이 그를 총알받이로 삼아 전쟁에 대한 책임과 과오를 국가적 차원이 아닌 특정 개인에게 뒤집어씌우며 죄를 무마하고 회피하는 전략은 분명한 잘못이다. 그러나 자진해서 꼭두각시가 된 도조를 동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우리가 짚어내야 할 것은 '도조'가 아닌 그의 뒤에 교묘히 숨겨져 있는 진실이다.  



이 책은 도조 히데키라는 인물의 삶의 궤적과 함께 당시 일본의 상황을 추적하면서 두 가지 문제를 짚어낸다. 도조 히데키와 육군의 중심인물들만이 쇼와 전사에서 전적으로 부정적인 존재인가의 여부, 도조 히데키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근대의 군사정치 형태의 부정적인 국면과 맞물림으로써 왜곡된 문제의 본질이 그것이다. 그리고 도조 히데키의 성향이 최고지도자로서의 입장에 어떻게 반영되고, 그로인해 시대의 양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검증한다. 저자는 도조 히데키을 실상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진실을 바로 알고 잘못된 점을 반성해 일본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를 바람하고 있다. 그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나 역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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