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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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 3부 리뷰 


메리 셜리, 에밀리 디킨스, 조지 엘리엣, 샬럿 퍼킨스 길먼, 실비아 플라스, 제인 오스틴 등 19세기 여성 작가와 작품을 통해 여성이 왜 가부장적이며 폐쇄적인 동굴 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는지, 세부적으로 분석해 설명한다. 








'펜을 드는 여자'는 건방지고 '주제넘을'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구제 불능인 존재다. 이 문장에서 읽히듯 문학에서의 부권 은유는 여성이 문학에 관여할 수 없음을 암시하고, 여성은 문학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관능의 대상으로 남성의 행위를 받아들이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가부장제가 딛고 서 있는 여성 혐오를 반영한다. 


여성은 자기를 '살해해' 예술에 가두어놓았던 미학적 이상인 천사 뿐만 아니라 대립적인 괴물도 죽여야 한다. 울프가 행한 이러한 방식의 시작은 기존에 뿌리내려진 여성의 이미지의 기원과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시학을 수립하고자 한다면 우선 분석부터 해야하는데, 천사와 괴물 이미지는 남성이 쓴 문학 전반에 퍼져 있을 뿐 아니라 여성문학에도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남자를 즐겁게 해주는 기술은 천사의 특징, 즉 숙녀에게 가장 적절한 행위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 최고의 교사인 세라 엘리스 부인은, '숙녀는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또는 존경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 같은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올바른 여성이라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품이 되든 성녀가 되든 아름다운 천사-여자의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 즉 자아를 포기함으로써 고귀해지는 것이다. 여성은 부여된 위치에서 벗어나고자하면(그래봐야 고작 도망가는 수준에 불과한) 저주나 복수의 대상이 된다. 문학 작품에서, 가부장제 내에서 갈등의 원인 제공은 남성이 하고 있으나 선악의 대립 구조를 두 여성에게 부여함으로써 서로를 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앤 피치, 에밀리 브론테, 에밀리 디킨스 등 여성들이 남성 작가의 텍스트에서 벗어났을 때 오랜 침묵은 깨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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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가도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대다수 여성들처럼 가부장제 여성들을 열등하게 취급하는 대체 심리학의 희생자다. 따라서 여성 예술가의 고독, 여성 작가 간의 갈등, 남성 작가들로부터의 소외감과 반감에 대한 두려움, 예술의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두려움, 여성 창조의 부적절함에 대한 불안 등 이 모든 '열등화' 현상은 여성 작가가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정립하려는 분투의 표식이다.  


18세기~19세기, 자신의 문학적인 노력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여자들은 미친 사람 내지 괴물 취급을 받았다. '성을 벗어났기' 때문에 타락했다는, 즉 여성의 지적 야망은 탈선과 동의어였던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에 따르면, 당시의 여성 문인은 '단지 여자'일 뿐임을 인정하거나 '남자만큼 훌륭하다'고 저항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이중의 속박에 갇혀 있었다.  


제인 오스틴 뿐만 아니라 샬럿 퍼킨스 길먼, 실비아 플라스 같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묘사하는 악은 각각의 결이 다른 공포다. 여성이 위험에 대한 감각을 무시해야 하고,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인식과 모순되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받았을 때 생기는 공포와 자기혐오다.  


제인 오스틴의 경우 초기작은 남성 작가의 문학적 인습을 노골적으로 패러디함으로써 여성을 지속적으로 세뇌하는 문화를 공격하고자 했다.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 말고는 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전통적인 생각에 대중적인 로맨스 소설이 어떻게 기여했으며, 여성에 대한 이런 억측이 '여성성'에 어떤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는가이다. 오스틴은 모든 여성이 세상을 향해 자기주장을 하고 싶은 욕망과 가정이라는 안전한 곳으로 숨고 싶은 대립되는 욕망으로 분열해 있을지라도 이런 심리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작품마다 암시한다. 여성에게는 개인적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의 관계가 매우 문제적이지만, 새로운 자아는 이중의 비전을 견지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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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의 시에는 남성 우월주의와 가부장적 사상, 여성 혐오가 깊게 뿌리내려 있다. 천사=남성, 사탄(괴물)=여성이라는 공식을 기본적 토대로 삼는다. 작가는 <프랑켄슈타인>을 성과 독서에 대한 여성의 환상소설로, 이른바 성서 발생론에 대한 메리 셸리의 인식을 반영한 고딕적인 심리 드라마로서 <실락원>이 내포한 여성 혐오 이야기의 또 다른 판본이라는 작가의 정의가 눈에 띤다.  


<프랑켄슈타인>과 <폭풍의 언덕>의 유사성을 보자면 둘 다 수수께끼 같고 당혹스러우며, 어떤 의미에서 총체적으로 문제적이라는 점이다. 두 대중소설은 많은 독자들에게 표면적 이야기가 복잡한 존재론적인 심오함, 정교한 비유의 구조, 모호하지만 강렬한 도덕적 야망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게끔 한다. <프랑켄슈타인>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호성이나 유동성처럼 <폭풍의 언덕>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존재론적 불안정성이다.  


<폭풍의 언덕>에서는 '밀턴'이나 '실락원'이 전혀 언급되지 않지만 종교적(천국과 지옥)이고 악마적인 요소가 드러나 있다. 작가는 <폭풍의 언덕>이 밀턴이 묘사한 지옥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반항적이고, 착한 딸이지 못했던 캐서린은 아버지의 죽음이 가부장적 규제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아닌 또다른 남성의 권력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그나마 부분적으로 독자적이었던 캐서린(여성)의 세계가 분열된다. 이처럼 여성의 자주권 박탈과 억압은 가해 당사자를 바꾸어 가면서 더 교묘한 형태로 강화 지속된다.  


작가는 캐서린이 숙녀가 되는 것을 추락이라고 표현하면서 동시에 캐서린 본인도 여자처럼 되기가 타락임을 알고 있었다고 썼다. 이는 밀턴의 이브가 타락했기 때문에 어떤 의미 있는 선택도 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은 맥락에 있음을 얘기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히스클리프가 외형적으로 남성성이지만 그의 괴물적 속성, 사탄적인 추방자의 방식으로 여성적이라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메리 셸리의 뒤를 이어 브론테처럼 19세기 여성 작가들은 밀턴의 여성 혐오를 전복시키기 위해 분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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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흥미로운 독서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읽으면서 도대체 무릎을 몇 번이나 내려쳤는지. 인상적인 부분들이 상당히 많고 재미지게 읽고 있으나 광범위한 내용을 정리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딱 절반을 읽었는데, 5부에 기대하고 있는 조지 엘리엇 편이 기다리고 있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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