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의 나라 -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에 관한 기록
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반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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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부부는 1975년 라오스가 공산 세력에 완전히 장악되면서 살던 땅을 떠나게 된 15만 몽족 가운데 하나다. 그들은 태국의 난민 캠프를 시작으로 하와이, 미국 포틀랜드를 거쳐 캘리포니아 머세드에 정착했다. 이들의 열네 번째 아이 리아는 1982년 7월 19일에 머세드에서 태어났다.  








 
이 책은 생후 3개월에 뇌전증이 발병해 문화의 경계에서 치료의 방향을 잃고 고통받았던 리아 리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 난민, 의료, 복지 등 사회 시스템 전반과 강대국이 관여한 전쟁의 폐해를 다루고 있다.  


일단 작가가 몽족에 대한 생활방식, 문화와 관습, 무속신앙, 역사, 그리고 미국 정착기 등을 설명해 낯설은 몽족에 대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사실 난민 문제 해결에 있어서 그들의 전통과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를 간과하지 않은 저자의 배려가 좋았다(책을 끝까지 읽으면 배려 이상임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몽족이 난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국제 정세의 배경 설명까지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어 넓은 시야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책의 전반부에서 몽족을 표현하는 문장 중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조국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노예가 되어 본 적도 없다', '몽족은 문자와 종교라는 구심력도 없고 생김새도 상당히 다양하다는 점에서 더욱 대단하다'. 뒤의 문장은 호주의 인류학자 게디스가 자신의 저작에서 쓴 내용인데, 몽족이 이민족들에게 둘러싸야 방대한 지역으로 흩어졌음에도 오랫동안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쓴 글이다. 


참고로, 1980년대 당시 미국 군립병원은 20년 내내 고질적인 재정적인 문제에 시달렸다. 환자 중에 민간보험을 든 사람은 20퍼센트에 불과했고, 나머지 대부분은 연방정부의 공공 의료보험 보조를 받았으며 일부는 그조차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1970년대 말부터 동남아 난민들이 머세드로 대거 이주해오기 시작하면서 전체 인구 6만여 명 중 몽족 인구가 1만 2천 명이 넘는다. 머세드 시민 다섯 중 하나가 몽족이란 뜻이다. 몽족 환자들은 다른 극빈층 환자들보다 훨씬 비용이 많이 든다. 워낙 수가 많으며 대체로 많은 관심과 시간을 요하고, 병원에서 환자아 의사소통을 위해 양쪽 언어를 다 구사하는 직원을 채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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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3개월에 첫 발작을 일으켜 머세드 군립병원  MCMC 응급실에 간 것을 시작으로 리아는 지속적으로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일곱 살이 되기 전까지 열일곱 번을 입원하고, 백 번도 넘게 이 병원의 응급실 문턱을 드나들었지만 매번 의료진과 리 부부는 서로 다른 의견과 언어 장벽으로 인해 충돌한다. 리아가 병원을 드나들었던 상황들을 살펴보면 뇌전증 발작 뿐만 아니라 호흡 정지, 폐렴 등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이는 과정이 잦은데, 이때마다 병원을 불신하면서도 딸을 그들의 손에 맡겨야하는 리 부부의 불안과 두려움이 어땠을지 짐작이 된다(거기다 딸의 몸에 주렁주렁 달린 기구들은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그러나 의료진 입장에서는 응급실로 달려온 리아를 안정시켜 놓으면 고맙다는 말은 커녕 원망 섞인 눈초리와 비협조적인 태도에 낙담하게 된다. 더구나 수 백 시간 치료를 지속하면서도 리 부부는 단 한 번도 치료비를 지불한 적이 없으면서 이에 대한 고마움도 표시한 적이 없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태에서 불신과 부정적인 감정이 쌓여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닫고 만다. 그런데 언어장벽과 몽족의 전통적인 관습이 맞물려 치료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사례는 리아의 경우 뿐만이 아니다. 



작가는 몽족의 사례처럼 단순히 언어장벽으로 인한 소통의 부재에서만 문제점을 찾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의료관, 그리고 삶과 죽음을 관조하는 시각의 차이를 언급한다. 과학적인 의료 체계 하에서 효율성과 편리함, 신속함을 우선으로 두는 시스템은 그들만의 신앙과 관습을 기다려줄 여력이 없다. 여기에서 오는 사소한 오해와 충돌은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아의 주치의 닐이 리 부부를 신고한 이유는 어떤 나쁜 의도와 오해 없이 오로지 자신이 처방한 약이 리아에게 제대로 복용되기를 바랐을 뿐이다. 다만 리아가 부모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과 리아가 낫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이 그들이라는 사실을 염두하지 않았을 뿐이다. 


닐이 리 부부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 계기는 그의 아들이 백혈병에 걸렸을 때다. 리 부부가 리아를 방치한 게 아닌 그들의 방식대로 아이를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긴 시간 동안 리아를 지켜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이는 리 부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닐 역시 의사로서 그가 리아에게 최선의 방법을 찾고자 했음을 비로소 늦게나마 이해한 것이다. 이러한 정서적 소통이 진즉에 이루어졌다면 리아의 치료 방향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지. 


그렇다면 의료진이 몽족의 관습을 고려해 리아에게 다른 아이가 받을 수 있는 최선의 처치를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리아의 가족이 따르기 좋은 방식으로 치료를 단순화해야 했을까? 리아 문제는 리 부부의 말처럼 과도한 투약이었다. 물론 선천적 뇌전증을 앓는 리아가 리오스에서 계속 살았다면 리 부부의 예상과는 다르게 유아기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작가의 말처럼 미국 의학은 리아를 살렸지만 한편으로 위태롭게 만들었다. 어떤 선택을 해도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고, 관점에 따라 차별적인 행동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선택에 있어서 우선해야할 전제는 무엇일까? 



작가는 리아의 삶이 망가진 건 패혈성 쇼크나 부모의 불이행 때문이 아니라 타문화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비단 의료 현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언어 장벽, 의사소통 부재, 그로인한 보이지 않는 박탈된 자유, 경제적 의존, 종교와 인종주의에 의한 차별과 편견 등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난민 문제들이다. 그런데 난민 안에서도 몽족처럼 소수자에 해당하는 민족들은 그 안에서조차 더욱 외면당한다.  

전쟁, 기후 변화 등 굳이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민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난민 수용의 여부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대안을 찾는 게 훨씬 현실적인 해결 방법이 아닐까. '동화'가 아닌 '조화'를 바탕으로 말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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