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32.
무책임하고 미성숙하고 변덕스러운 더러운 년. 그러나 그들이 진짜 단어를 찾을 수 있을까? 자신들의 인생에서 갖지 못했기에 단어 목록에 없는 유일한 언어. 자유라는 단어를. 
 







 
상앗빛 누런 이빨, 미모사 같은 노란 눈, 풍성한 검은 털에 노란 별빛의 반점이 있는 진짜 늑대와 첫사랑에 빠진 뤼시. 늑대는 그녀가 두 살 때 서커스단에 들어와 여덟 살 때 죽었다. 그들은 뤼시의 잠옷으로 감싼 늑대를 아를 근처의 황무지에 묻어주었다. 소녀는 늑대와 교감하며 가졌던 순수했던 영혼을 간직한 채 생명력과 활력이 넘치는 부모, 때로는 부모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어릿광대, 곡예사의 보살핌 아래에서 성장한다. 뤼시의 가출 아닌 가출은 늑대가 죽은 후 시작됐다. 


여덟 살부터 열 살까지, 여섯 번의 가출을 실행한 뤼시를, 서커스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어머니는 딸을 이해하는 웃음으로 그녀를 찾아 데려온다. 그렇게 탕아는 늘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뤼시의 어머니가 매번 딸을 찾아 데려오면서 호탕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던 건, 딸의 가출이 처한 현재에 대한 불만과 반항이 아닌 온전한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과 아주 흡사한 영혼을 가진 딸을 이해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녀 뤼시는 사람들이 자신을 더는 사랑하지 않을까 봐 두렵다면서도, 그에 대해서라면 안심이 된다고 말한다. 왜인지 모르지만 마음이 놓인다고. 마치 늘 사랑받았고, 자기 자신에게 안도했던 어머니처럼. 언제든 자신을 사랑해 줄 누군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이런 면에서 뤼시가 스스로를 얼마나 신뢰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직감을 통한 자신의 선택을 '수호천사'라고 지칭하며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삶이 자신을 정말로 사랑한다는 낙천적인 부분이야말로 아무도 해칠 수 없는, 그녀가 가진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ㅡ 


어머니와는 다른 아버지의 완벽주의 성향을 치유가 불가능한 병이라고 말하는데, 생각해보면 '완벽'이라는 게 존재할리 없으니 모든 것을 더 더 잘해내야한다는 강박은 결국 본인과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만 할 뿐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어쩌면 이같은 아버지의 완벽주의 탓에 뤼시가 더욱 자유로운 삶을 갈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 부부 중 모두 정상인 경우가 없다는 얘기를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읽다가 빵 터지고 말았다. 둘다 비정상이거나 둘 중의 하나만 정상이라는 건데, 뤼시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기 부모님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로망 부모님의 경우에는 둘 다 해당될 터다. 루쉬와 로망 중에서는 누가? 이쯤되면 대부분의 부부가 서로가 정상이라고 우길테지만, 본인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 차라리 현명하리라.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뤼시의 어머니가 열일곱 살 딸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의 반응이었다. 딸의 가출을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긍정했던 어머니는, 결혼은 서로에게 창살과 열쇠가 없는 감방이 될 수 있으니 신중하라고 조언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른 나이에 치르는 결혼을 두고 자기 마음에 귀 기울이는 법을 알고 있어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딸을 칭찬하면서 자신들이 잘 키웠다고 얘기한다. 과연 일방적인 통보만 한 열일곱 살 딸의 결혼에 이런 조언과 덕담을 해 줄 수 있는 어머니가 얼마나 될까.  



뤼시는 생애 초기에 방랑자 생활을 통해 끝없는 볼거리를 제공받았고 그로인해 세상을 다각도에서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됐다. 그럼으로써 세상은 부와 빈으로 구분되어진 것이 아닌 오로지 부자 중심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사회적 규범이 '정상성'을 기준으로 인간의 자유를 얼마나 억압하는지 이른 나이에 알게 됐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공중그네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잔인한 행위로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폭력적인 어릿광대의 공연처럼 세상은 누군가의 고통을 지지대 삼아 존속한다. 욕구를 억누르고 세상의 기준에 맞춰서 살라고, 매일매일이 오늘이건만 당장의 기쁨보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라고, 사랑보다는 사회적 성공을 더 우선하라고, 그렇다면 만족할만한 내일은 언제쯤 오는건지.  


7년의 결혼생활 중에 스무 번 시도한 뤼시의 탈선은 네 번 이루어졌다. 그것은 결혼생활의 권태에서 오는 즉흥적인 이탈이라기보다 뤼시의 떠도는 영혼이 쉼을 찾는 방법이었을 터다. 뤼시는 이혼을 결심한 로망에게 다시 찾아가지 않은 자신의 마음이 무정이 아닌 가벼운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생애 첫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말하는 알방에게 가벼워진 마음을 발견하고 그에게서도 떠난다. 소설의 마지막, 뤼시의 행보는 역시나 독사의 예상을 뛰어 넘는다. 



마리즈 농샬롱 아주머니의 할머니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누구한테서도 즐거움을 빼앗기지 말라고. 뤼시는 자신의 직감과 욕구, 그리고 영혼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데에 서슴치 않았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삶의 본질에 대해 물으며, 자신이 품은 질문들에게 숨을 불어 넣어 응시한다.  


여러 면에서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현재에 뤼시의 삶은 즉흥적이고 허황되다고 말하는 이도 있겠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하루하루 쏟아붓는 노력이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안정을 보장받는 가정,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일자리, 기다리고 있는 사랑. 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오롯이 자신이 선택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뤼시의 삶이 대중의 눈에 어떻게 보여지든 간에 나는 그녀가 부럽다.   


작가는 소설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 뿐'이라고 했는데, 가슴 속에 그토록 헌신적인 사랑을 품고 사는 이가 이런 글을 썼다는 사실에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어쩌면 그 사랑조차 자신을 위해서라고 말할 것은 사람이다.  



사족
인간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 거리두기의 기술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그 거리두기에 사랑도 예외는 아니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