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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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성, 인종, 장애, 성소수자 등 차별과 혐오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들이 미술계에서 어떻게 소비되어 왔으며, 도외시 되었는지 얘기한다. 







소수자 차별, 대리모, 성 착취, 월경 혐오, 가부장제, 모성 이데올로기, 여성 노동, 가사노동 폄하, 아동 착취 및 비하, 노인 혐오, 기득권층의 허위, 소수민족 박해, 도시 개발과 빈민자, 시민 통제와 감시, 광기에 가까운 투기, 동물권, 환경 오염,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포장되는 문화 후원 등을 예술 작품과 더불어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을 통해 변이된 형태로, 본질적으로는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우리 사회의 시선과 시스템을 짚어내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를 시작으로 대중이 익히 알고 있는 마네의 <올랭피아>, 무리요의 <포도와 멜론을 먹는 소년들>, 아르천의 <푸줏간>, 마네의 <아르장퇴유>, 드가의 <기다림>, 잭슨 폴록의 작품 외에도 조금은 익숙하지 않은 작품들 안에서 당시 시대를 읽어볼 수 있다. 이 책이 재미있는 점은 그림 속에서 스쳐지나갈 인물들의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책에 실린 내용들 중 일부는 이미 인지하고 있었으나 현재를 사는 대부분의 우리가 고민해야 할 명제들이기에 흘려 읽히지 않았다. 특히 지금은 사라진 '어글리 법'에서 언급된 안토니에타, 파스트라나의 사연은 다시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죽음 이후 철저히 배제된 이유를 생각해보면서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유리 천장과 유리 절벽으로 대변되는, 소수자의 입장에 서 있는 여성의 위치를 새삼 느낀다. 그리고 자궁 혐오가 호르몬이라는 과학 용어로 포장되어 지금도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몰아감과 동시에 여성의 신체 자체가 차별의 근거로 쓰이고 있는 현실도 지적한다.    


노동에 있어 19세기 이전까지는 다방면에서 여성과 남성은 함께 일하는 동료였으나, 산업화 및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여성에게는 '노동력 재생산'의 역할이 맡겨졌다. 이러한 방식은 무보수 노동을 여성에게 전가함으로써 자본가의 추가 이윤을 창출하게 된다. 자본주의가 '전업주부'를 권하는 이유는 체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여성의 가사와 돌봄의 무상 노동이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여성 노동이 더 이상 '잉여'가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없어지지 않을 폄하된 '그림자 노동'은 어떻게 해결할 셈인가. 가사 노동에 대한 사례 중 19세기 해나 컬윅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녀의 지극히 현실적이고 현명한(?) 판단에 박수를 쳤다. 그깟 변호사 아내의 지위(!)가 뭐라고.


성소수자로서 미켈란젤로의 커버링과 릴리 엘베의 커밍아웃을 통해서 본 '정상성'의 기준, '동물권'이라는 용어 자체가 인간이 지구의 주인임을 드러내는 오만함,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만들어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기후 위기, 겉으로는 선진 도시 구축이라는 모양새를 띠고 있으나 기득권층의 잇속대로 짜여져 투기를 조장하는 것은 물론이요 도시 빈민층을 양산해내며 심지어 시민을 통제하는 용도까지 감안한 도시 개발, 예술을 선의의 가면으로 이용하는 자본가들의 속내와 이로인해 한때는 정치적 권력에 의해, 현재는 돈의 권력에 휘둘리는 예술계 등 만연한 사회의 문제들을 하나둘씩 돌이켜 볼 수 있다. 서너쪽에 불과한 분량이지만 기후 위기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작가의 의견에 공감하며 이에 동의한다. 


​책의 목적 자체가 사회 비평서가 아닌만큼 사회 문제에 대한 대안이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변함없이 순환되는 우리 시대를 미술 작품 안에서 혹은 작가와 작품의 뒤에 숨은 사연을 통해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에세이다. 다만 숙고해야할 것은 이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대중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던 작품들을, 과연 우리는 '공정'과 '동등'이라는 시선으로 보았는지의 여부다. 우리는 혹시 몇 도쯤 기울어진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것이 '정상'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봐야할 터다.




사족
가방에 넣어 다니가 부담없는 책 사이즈가 마음에 든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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