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뤼아르 시 선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21
폴 엘뤼아르 지음, 조윤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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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시인 폴 엘뤼아르. 그의 시가 여러 분야에서 응용되고, 언제부턴가 유행하는 미술(혹은 음악)과 크로스오버로 출판되는 책들에서 한두편은 볼 수 있어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의 첫 번째 부인인 갈라가 살바도르 달리의 아내라는 사실 때문에 나름 널리 알려져 있다(엘뤼아르와 달리는 둘 다 다다이즘을 추구하는 초현실주의 작가로 친분이 있다. 무슨 모임이 있었다는 것 같기도 하고). 각설하고. 


사실 엘뤼아르의 시집은 귀하다. 2000년 이전에 출판한 시집은 분량도 얼마 안 되고, 그나마도 몇 권 되지 않는데다 현재 거의 절판 상태다. 그래서 엘뤼아르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에 대한 반가움의 정도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짐작할 만하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연필과 포스트잇까지 단정하게 갖춰놓고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책을 보니 대부분 줄이 쳐져 있고,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이런... . 의미 없다, 의미 없어.
잔뜩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모두 떼고, 두번째 읽으면서 정말 붙여야 할 곳에 신중하게 붙이리라 했는데, 또다시 덕지덕지.  









이 책은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연대별로 나뉘어져 있다. 
1920년대까지는 여인에 대한 사랑과 찬사에 대한 시들이 많다. 그중에는 시대의 약자에 속하는 여성과 어린아이의 아픔에 대해 노래하며, 그 아픔에 동참함과 동시에 잘 살아내자는 격려를 잊지 않는다.  


'희망, 절망은 사라진다,
무너진 경계, 고통, 혼란은 
경멸로 치장한다,
별들은 물속에 있고, 다름다움에 그늘이란 없으며,
무든 눈은 서로를 향하고 동등한 시선은
시간 밖에 놓인 경이로움을 나눠 갖고 있다.'
('지식 금지' 에서) 


ㅡ 


1930년대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살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굴곡에 좀더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더욱이 전쟁 이후에는 참여시와 정치적인 냄새가 뭍어나는 시들이 종종 눈에 띈다. 1930년 이전까지는 연인, 혹은 타자와 일대일의 관점이었다면, 이후에는 범인류애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전쟁의 참상과 안타까움, 인간이 인간으로 인해 갖는 고통, 그럼에도 삶에 사람과 사랑이 있으니 기쁨을 멈추지 말자고 얘기한다. 또한 1950년대 시에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두드러지는데, 좌절과 절망의 극복의 원천이 되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한 타인과 함께하는 희망적이며 충실한 삶의 바람이 담겨 있다.  


'수렁의 끝
버려진 방 실패한 방
빈방 안에 흐르는
매일의 시간이 있었다.'
('고통' 에서) 


'내 나이는 항상 내게 알려 주었죠
타인을 통해 살아가야 할 새로운 이유들을
그리고 내 심장에 다른 심장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살아가다' 에서) 


'무슨 상관인가 내 이미지가 늘어났던 것이
무슨 상관인가 자연과 거울이 흐려졌던 것이
무슨 상관인가 하늘이 비어 있었던 것이 나는 혼자가 아닌 것을.'
('이곳에 살기 위하여' 에서) 


'기억과 희망은 신비로움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
다만 내일과 오늘의 삶을 만들어 낼 뿐.'
('다섯 번째 볼 수 있는 시' 에서) 


ㅡ 


내가 뭉클했던 시는 1950년대에 쓰여진 '죽음 사랑 삶' 이다. 어느 특정인이 아닌 누구의 삶을 대입해도 다 마땅할 것만 같은 이 시는 삶이 갖는 슬픔과 아픔, 공허와 고독, 그러나 선물처럼 찾아오는 희망과 사랑에 기뻐하며 나아가 타인과 자연을 아우르며 조화를 이뤄야함을 불과 48행의 시에 녹여냈다.  


어찌 엘뤼아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읽는 동안 충만한 시간이었고, 책장에 들어가지 못한 채 계속 나의 다이어리 곁에 머물 것 같다.  




사족
각 시마다 원문이 실려 있어 프랑스어 읽기가 가능한 분이라면 더할나위 없을 듯 하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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