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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평점 :
61.
인간의 상상력이 닻을 내릴 단 하나의 장소도 찾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단 하나의 돌멩이도 정지 상태로 간주될 권리가 없다면 우리가 불확실성 속으로 얼마나 빠져든 것일지 그저 상상해보라!
(슈바르츠실트)
화학, 물리학, 수학이라는 학문, 그리고 그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대한 논픽션 소설이다. 다섯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있는데, 각 챕터는 개별적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듯 하지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진 것처럼 연관되어 있다. 소설은 사실을 기반으로 등장하는 학자들의 치열한 고뇌와 광기어린 깨달음, 그리고 과학과 세상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 결과들이 예기치 못한 변곡점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흥미롭게 그려낸다.
유대인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1907년 사상 최초로 질소를 공기 중에서 직접 채취했고, 그의 실험을 바탕으로 다국적 기업 바스프의 공학자 카를 보슈의 산업 공정의 과정을 거쳐 화학 질소비료가 개발됐으며 곧 비료의 대단위 생산으로 이어졌다. 농작물이 늘어난 것과 비례해 인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그들은 질소 비료로 재배된 작물을 먹고 산다. 하버는 1차 대전이 시작되기 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시작은 빈곤과 기아의 해결 때문이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당사 하버가 개발한 염소 가스는 벨기에 이르프에서 프랑스군 5천여 명을 고통스럽게 죽음으로 이끌었고, 더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으며 유럽의 분쟁이 더 길어졌다.
아마 그때는 하버도 몰랐을 것이다. 수십 년 후 그가 발견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화학적 발견이 나치에 의해 유대인 학살 도구로 쓰여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희생된 이들 가운데 자신의 이복 여동생을 포함한 가족들이 있었음을. 죽음에 가까워져서야 자신이 지구의 자연적 평형을 교란하고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사실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으나 너무 늦은 후회다. 그런데 하버가 아니었다고 해서 이 화학식이 끝내 발견되지 않았을까? 그럴리 없다. 우리가 역사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은 다른 지점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색, 프러시안블루의 기원을 좇다보면 이 색을 마냥 아름답다고 추어올리기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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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아인슈타인에게 전장에서 '일반상대성 방정식에 대한 최초의 정확한 해'를 보낸 사람, 슈바르츠실트. 슈바르츠실트가 이 특이점을 찾아냈을 때 그는 이미 인류의 파국을 발견했다. 그는 죽어가면서 인류 종말을 예언했다는데, 만약 이 해가 아인슈타인에게 전해지지 않았다면 세계 역사는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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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그로텐디크는 자신의 개념들이 과거의 과학자들에 의해 인류와 자연을 파괴했던 것처럼 세상에 피해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강박적이고 광적으로 집착했다. 탐욕과 폭력의 광기에 휘둘리는 세상에서 인류의 안녕을 위해 병적으로 자신의 연구가 공개되지 않기를 바랐던 천재 학자의 이 극단적 집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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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에서 시작되어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 드 브로이(루이 피에르 레몽), 에르빈 슈뢰딩거로 이어지고 확장되는 양자물리학에 대한 이야기. 양자역학의 창시자라는 명예는 하이젠베르크에게 돌아갔고, 나머지 과학자들은 말년에 양자학에 등을 돌렸다. 다만 하이젠베르크도 자신이 창시한 학문이 히로시마 하늘에 버섯구름을 피우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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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저지른 과오는 아직까지도 그 영향을 미친다. 살충제와 화학 비료로 인해 인류는 말할 것도 없고 무고한 생명체가 멸종 위협을 받고 있다.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 혹은 기아와 빈곤 퇴치를 목적으로 했던 과학은 학살 무기에 사용되었고, 그 영향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세대를 이어가며 여전히 존재한다. 이 작품의 제목,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뒤에 올 문구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세상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반추하는 것을 멈춘다면 우리는 자멸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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