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레트, 묘지지기
발레리 페랭 지음, 장소미 옮김 / 엘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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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를 마치고, 일단 이토록 길게 드리워진 여운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숱한 감정들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도대체 그들은 그 마음들을 어떻게 담고 살았던 건지... . 


소설은 묘지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과 비올레트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커다란 두 개의 사건에 대해 필리프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관점에서 진행한다.  







 
아르덴 지방에서 부모를 모르는 채로 태어난 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의 문턱에 머물다 온 아이의 이름은 조산사가 급조해 지은 비올레트 트레네. 필리프와 결혼해 얻은 성, 투생. 위탁가정에서 자란 비올레트가 늘 꼿꼿하게 곧은 자세를 유지하는 이유는 부모의 부재 때문이다. 그것이 오히려그녀에게 척추의 지지대 역할을 했다.  


건널목지기였던 투생 부부는 1997년에 건널목이 자동화되면서 직장을 잃었다. 비올레트는 묘지지기가 되기 위해 남편을 설득했다. 비올레트가 숨막힐듯한 건널목지기의 업무를 하는 동안 필리프가 한 일이라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여자와 어울리는 것 뿐이었다. 묘지지기가 된다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 1997년 8월 15일, 투생 부부는 부랑시옹엉살롱 묘지에 도착했다. 비올레트는 비로소 편안해 졌다. 마치 자기자리를 찾아간 것처럼.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시작한 묘지지기의 일을 20년째 하고 있는 비올레트. 어느날, 어머니가 죽은 뒤 가브리엘 프뤼당이라는 사람의 묘 옆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겨서 그의 묘지를 보러 왔다는 쥘리앵 쇨. 죽은 남편이 묻힌 묘지가 있는데도 버젓이 다른 남자의 묘지 옆에 묻시고 싶다는 어머니의 사연을 들고 온 남자는 추도문 작성을 위해 비올레트에게 도움을 청한다.  


소설은 이 두 사람의 만남을 시작으로 이렌과 가브리엘의 긴 세월동안 이어진 러브 스토리와 비올레트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그동안 감춰졌던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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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리뷰를 쓸 수 없는 작품들이 있다. 독자가 읽어야만 감흥을 오롯이 느낄 수 있기에 섣부른 리뷰는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하는데, 이 소설이 그렇다. 도대체 나의 이 얕은 글솜씨로 소설 전체에서 전해지는, 이 짙게 눌러내리는 감정들과 촘촘한 고리들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난감하기만 하다. 


읽는 동안 비올레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마음에 동화되면서 여러 번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나는 그곳에서 레오닌의 이름을 읽는 순간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미워했던 필리프. 그가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소설 중반까지도 절대 악인처럼 느껴졌던 그 역시 어머니의 과보호로 인해 상처받은, 그래서 내면의 아이는 성장하지 못한 채 몸뚱이만 커버린 사람이라는 사실에, 그리고 중년이 넘어서야 자신이 진정 놓친 게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은 그를 보면서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왜 어리석게도 번번이 기회를 놓아버렸을까.   


이렌과 가브리엘의 사랑이야기를 읽으면서 한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영화가 생각났다. 소설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와 영화 <데미지>. ( 이 소설에서는 영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가 등장한다.) 인생을 물리적으로 함께 영위하지 않았으나 삶이 다할 때까지 서로를 놓지 않았던 두 사람(메디슨카운티의 다리)과 격정적 사랑 이후에 모든 것을 잃고 수 년이 지난 후 우연히 스치듯 지나쳐버린 만남을 통해 회한을 느끼는 남자(데미지). 나처럼 겁이 많은 사람은 상처받는 게 두려워 두 방식의 사랑을 모두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런데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부부 관계를 지속하는 게 서로에게 괜찮은 건지, 모든 것을 잃어도 좋을만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열정을 부러워해야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이 소설의 유쾌한 장점은 이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백작 부인이 있다는 것인데, 그녀는 아주 지극히 현실적이고 솔직하다).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 보이는 쥘리앵과 비올레트의 인연은 이렌에게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늘 얘기하듯 인생에 있어 옳고 그름이 언제나 명확하지는 않고, 인연 또한 장담할 수 없다. 어느날 길에서 우연이 시선이 마주쳤거나, 어깨를 스친 이들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누가 알겠는가. 알고보니 SNS에서 수없이 '좋아요'를 누른 사람일지도)? 


소설 종반에 드러나는 마지막 두 개의 반전. 그들의 아픔에 함께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나도 모르게 손이 저절로 입을 막게 된다). 비올레트는 묘지에서 타인의 삶과 죽음을 통해 치유받았다. 삶은 지속되기에,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사람을 살게하는 것은 사랑, 그리고 사람이라는 것 뿐이다. 쥘리앵과 나탕, 비올레트처럼.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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