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베이비 -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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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할머니가 언제부터 할머니였는지 몰라도 할머니는 늘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 조금도 젊지도 늙지도 않은 모습 그대로 거기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석탄이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하향산업이 된 탄광산업. 탄광이 멈추자 광부들은 지음을 빠져나갔고, 지음은 죽은 도시가 됐다. 공공사업 레저타운 특별법, 즉 지음에 카지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지면서부터 외지인들이 땅을 사려고 지음으로 몰려들었다. 지음의 토박이들은 너도나도 집과 땅을 팔았고, 지음 땅이 외지인들 손아귀에 들어간 뒤에야 법이 만들어졌으며, 그때부터 땅값은 수십 배나 뛰어 원주민들은 가슴을 쳤다. 탄광 부활이 불가능하다는 기정 사실에도 지음에서는 카지노 특구를 두고 보상금을 노린 찬반 시위가 벌어졌다. 랜드 건설이 확정된 뒤로 광업소는 문을 닫았고, 광부들은 여기저기 공사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광업소가 있던 지장산 중턱에는 카지노와 골프장과 스키장, 호텔과 리조트가 들어섰고, 광부 사택과 포장마차 거리는 슬립시티와 전당포 거리로 바뀌었다. 


이제 탄광촌 지음은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지장산에 위치해 랜드와 카지노가 세워져 있는 웨스트부다스, 지음교회 때문에 이름 붙여진 지장천 인근의 이스트지저스, 그리고 둘 사이에 도박꾼들이 머무는 모텔촌을 이루며 이도저도 아닌 슬립시티가 있다. 








 
소설은 도박산업에 몸을 담아 연명하거나 카지노를 드나들며 좀비처럼 피폐해져가는 인간군상을 열 살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다. 


카지노에서 눈이 맞아 랜드 호텔 방에 살림을 차리고 도박에 정신이 팔려 임신한 줄도 모른 채 출산까지 이어진, 그래서 카지노에서 태어나 카지노에서 살았고 또 다른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아이, 선인인지 악인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염 목사, 현재 누군가는 전당포 사장이고 누군가는 핏 보스며 또 다른 누군가들은 카지노 사업에 기생하며 살고 있지만 과거 광부였거나 혹은 광부의 자식들이었던 사람들, 전국에서 신체 포기각서까지 들고와 도박 좀비가 된 사람들, 이 모든 이들의 탐욕을 악랄하게 이용하며 지음을 지옥 구덩이로 만든 외지인들, 그리고 이 아비규환 속에서 자신의 삶과 가족, 이웃을 지키며 굳건히 살아온 할머니까지. 돈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털려버린 이들이 떠나지도 머물지도 못한 채 유령처럼 부유하는 도시 지음은 다른 의미에서 죽음의 도시가 되어간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탕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삶과 사람을 지키내는 것에 대한 어려움, 그러기에 그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를, 소설은 이야기한다. 화자가 서류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 아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한데, 이 아이가 비로소 존재를 드러내는 세상은 한 세대를 마무리하는 죽음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언뜻 비관적으로 시작되는 듯 보이지만 소설은 내내 담담함을 유지하고, 소설에서 구심적 역할을 했던 이의 죽음 또한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으며 오히려 남은 이들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발판이자 희망으로 떠오른다.   



저마다의 인생에서 사연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꾸준히 살아가야하지 않나. 과거 동영진 여사가 그러했고, 앞으로 이어질 동하늘의 미래처럼. 사흘 만에 구조되어 기적처럼 살아난 동하늘이 지음을 향해 달려가듯 소설은 동하늘과 지음을 생명력이 강한 희망으로 놓는다.  


개인적으로 동하늘의 이야기보다 3부의 할머니 이야기가 마음을 흔들었다. 길게 서술하지 않은 할머니의 유년시절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지음으로 흘러든 사연, 격동하는 세상에 저항해야만했던 젊은 시절, 그리고 동영진 여사의 유쾌한 마지막 행보는 잊혀지지 않을 우리 시대의 어른으로 기억될 듯 하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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