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잠수복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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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를 얘기할 때면 다수의 독자들이 <공중그네>를 떠올리는데, 나에게 있어 그의 대표작은 <남쪽으로 튀어> 다. 호쾌, 통쾌, 유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한 진한 페이소스가 소설 전반에 가득했던 그의 작품이 최근에는 훈훈한 인간애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들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아내의 외도로 당분간 별거를 결정하고 곧 철거를 앞두고 있는 바닷가 마을의 낡은 빈집을 단기 임대해 머물게 된 무라카미 고지. 조기 퇴직 권고를 거부해 교외 공장의 위기관리부에 발령이 난 다섯 명의 중년 남자들. 지명 1순위로 프로구단에 입단했으나 부상과 성적 저조로 슬럼프에 빠지며 2군에만 머물렀던 남자친구 다무라 유키가 입단 4년만에 상승세를 타면서 올스타 명단에 이름이 오르자 위기감을 느낀 아사노 마이코. 자신이 코로나에 감염됐다고 확신해 스스로 자가격리에 들어가고, 잠수복을 입은 채 생활하는 야스히코. 55세가 되자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젊은 시절 너무나 갖고 싶었던 1980년 초대 피아트 판다를 사기로 결심한 고바야시 나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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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후배는 결혼 생활을 자식 때문에, 혹은 의리로, 혹은 정으로 지속하는 건 별로라고 했다. 결혼이든 연애든 영원히 열정적이기만한 사랑이 있을까? 쉽지 않은 세상의 풍파를 함께 견뎌온 사람이라면 그 이름이 의리든 우정이든 사랑이든 함께 할 가치는 충분하지 않으려나... .


그야말로 청춘을 다 바친 회사에서 사실상 지명 해고를 당한 중년의 다섯 남자들은 복싱을 하면서 잊었던 청춘의 기억을 떠올린다. 기업은 설득과 타협, 상생의 과정없이 가장 손쉬운 해고를 선택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비인간적인 처우로 해고 대상자의 모멸감을 자극하는 가혹한 방식으로 목적을 이룬다. 직원들은 그 화살이 언제 자기한테 향할지 모르니 함부로 나설수도 없다. 중년을 맞는 대다수 사람들의 자화상이다. 이들이 복싱을 통해 얻은 것은 과연 흐릿한 청춘의 기억 뿐일까. 


학벌, 집안, 연봉, 재산이 결혼 조건의 우선 순위가 된지는 이미 오래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삶의 위기가 왔을 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마찬가지의 상황에서 자신은 상대에게 품을 내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실 그보다 앞서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나 스스로 미래를 설계할 힘이 있는지를 살펴야한다. 자립이 가능한 사람이야말로 상대를 더 사랑할 수 있을테니.  


팬데믹 시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부분 달라졌고, 달라진 세상에 익숙해졌다.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름을 떠나서 세대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와 시각에 차이는 있을 것이다. 이제 세상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졌음은 분명해 보인다. 포스트 코로나를 염두해 두고 여러 책들이 출판되고 있으나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정작 내가 생각하는 건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가 잃은 것과 새롭게 만들어진 것,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이다. 


그나저나 한동안 잠잠했던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증가 추세다. 왜 이러냐, 또... .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있는 요즘이다. 작가는 인류의 구세주가 다음 세상을 이끌어갈 아이들이라고 얘기하는데, 그 아이들이 잘 넘겨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는 이들은 지금의 어른이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더 크게 생각되어진다.   


<판다를 타고서>는 수록된 소설 중에 가장 마음에 남는 작품이다. 도미타의 추억 여행보다는, 쉰다섯의 나이에야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물리적 심정적 여유가 생기고, 타인의 인생을 통해 치열하게 달려왔던 자신의 지난 인생을 위무하며 안식하는 나오키를 통해 우리 시대 중년들의 모습에 뭉클함을 느낀다 (나오키가 '파이트 클럽'의 멤버 중 한 명이라고해도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내가 쉰다섯 살에 한 가지를 산다면 뭘 살까... 생각해 봤는데 단번에 피아노가 떠올랐지만 이내 지워버렸다. 대여섯살 무렵부터 함께 한 지금의 투박한 피아노를 과연 내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이처럼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우리 주변에 아는 누군가의 사연이라고 해도 믿겨질만큼 지금을 살고 있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각각의 단편인 소설들에는 공통적인 장치가 등장한다. 비현실적인 소설 속 이 장치가 현실의 우리에게는 전혀 가능하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인생에는 믿기지 않는 비극도, 믿기지 않는 희극도 존재하니까.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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