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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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과의 비교는 부족함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아지기 위한 새로운 영감을 주는 용도일 때 의미가 있다.(p303)" 이 문장으로 저자가 어떤 태도로 책을 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사람인 먼저인 도시'를 추구하는 그의 생각이 그대로 녹아있다. 건축 혹은 도시 미관이나 공간 활용에 대한 설명보다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거나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보이지 않은 '도시'의 인식을 다른 시각에서 포착해 이야기한다.  








프랑스 파리와 우리나라 신호등 위치에 대한 글을 읽고 처음에는 오호~했는데, 서구의 도시 문화가 기본적으로 인간을 신뢰하지 않으며, 항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 지킬 수밖에 없도록 만든 시스템이라고 하니 어쩐지 생각이 많아진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서구의 도시들처럼 도시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것이라는 지적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신호등 위치가 과연 인간을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선진국은 있어도 선진 국민은 없는 셈이라는 저자의 말이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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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은 모든 방이 직사광선이 아닌 마당에서 반사되는 간접광에 의지하는 구조로써 방향에 강하게 구속되는 집이 아니었기에 남향에 대한 집착도 없었다는데, 결국 양옥집을 거쳐 아파트 문화가 대세가 된 근현대 이후부터 남향에 집착할 수 밖에 없게 됐다는 말씀일 터다. 그동안 다녀왔던 적지 않은 답사지를 떠올려 보면 전통적인 집이 땅 주변 환경에 순응하는 식으로 지어져 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남향집을 선호하면서도 정작 남향의 거실과 안방에서 머무는 시간대는 주로 해가 진 이후의 저녁 시간 이후라는, 그래서 방향은 남향집이나 실생활은 북향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4장을 읽으면서 집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그렇지 않아도 집을 리모델링 해야할지 이사를 가야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덕분에 생각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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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도시 환경에서 길은 도시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자 건물보다 절대 우위를 점한 공공재다. 서구에는 길이 존재하지 않으면 건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길을 단지 연결로가 아닌, 도시라는 생태계를 구성하고 유지시키는 뼈대와 신경계로 여긴다. 반면 한국의 경우 마을이 먼저 하나둘씩 형성되면서 집을 짓고 남은 땅이 자연스럽게 길이 되었기 때문에 전통적 의미의 길은 집과 집,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연결로에 가까웠다. 한국이 잘 정비된 가로를 따라 건물이 들어선 것은 20세기 초 일제 강점기였다는 설명을 하면서 파리와 안동을 비교하는 사진이 실려있는데, 그 차이가 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문득 로마가 가장 우선했던 사회 인프라가 도로 정비였던 것을 떠올려보면서 이러한 차이들이 자연환경과 지형이 다른 것에 일부 원인이 있을 것이고, 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다른 것에도 일부 원인이 있을 터다.

가족적 규모의 소집단에 강하게 결속되어 큰 규모의 연대로 발전하기 힘든 문화권, 개인성이 강하지만 당면한 문제에 의견을 나누고 연대해서 사회적인 규모로 발전시키는 것이 수월한 문화권. 이를 통해 사람들의 관계가 사회적인 제도와 물리적인 건축 혹은 도시 공간에  미치는 영향은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 철학 중 하나가 자기 땅 담장 밖의 세상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즉 '자기 내향형' 건축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방증을 '담'에서 찾는다. 혹자는 낮은 담을 예로 들며 반문하는데, 동네 사람 대부분이 혈연이나 지연으로 엮여 있고 이방인 유입이 거의 없던 씨족 마을의 경우 방범을 위한 높은 담의 필요 없었을 뿐. 재미있는 점은 경복궁과 루브르궁의 그림을 놓고 다른 점을 비교하는데, 소통의 차원에서 보자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주시해야할 논점은 도시, 그리고 도시를 이루는 건축과 그 건축물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의 내재적인 특성에 대한 연관성이다.   

사는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다면 공통점도 있다. 바로 인간의 욕망이다. 도시는 생존과 경쟁을 위한 상징물로 채워졌고, 시민을 소비의 대상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웃'이 아닌 소비체가 된 시민은 도시를 소비의 대상으로만 사용하게 된다. 누구를 만나는 것도, 잠시의 휴시도 비용을 지불해야 가능하지만, 이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고대부터 인간의 욕망과 경쟁을 상징하는 것은 건축물의 높이. 바벨탑부터 시작된 높이 지향은 현대 사회에서 초고층 빌딩들이 뒤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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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회 구심적 공간과 사회 원심적 공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두 공간을 나누는 핵심은 '주도권'이다. 즉 누가 공간 사용의 주도권을 가졌느냐인데, 이것으로 두 공간의 결정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주도권이란 그 공간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 심리적 소유권을 뜻한다. 공간 소유권은 공간에 대한 애착으로 발전하는 핵심 요소라는 것. 우리가 지금의 도시가 예전보다 점점 더 삭막해졌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자는 이에 대한 원인을 '도시 공간 주도권 박탈'이라는 소견을 내놓는다. 무엇보다 '사회 원심적 공간' 방식을 현대 도시의 공간 구성 방식으로 선호하는 것이 오늘날 도시민이 느끼는 외로움의 실체적인 원인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의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 주거지를 선택할 때(특히 아파트) 많은 사람들이 살기도 전에 환금성을 따지고, 그 안에서 살게 될 나와 가족들의 삶의 질조차 '상품'으로 대체되는 사회 분위기를 따져볼 때 저자의 말이 현실적으로 틀리지 않음을 새삼 느낀다. 그러다 보니 집에 대해서도 심리적으로 온전한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집에 흠이 생기면 팔 때 곤란해지니), 이러한 사고가 확장되면 도시에 소유권은 구조물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이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종속되어 수동적인 시민이 될 수 밖에 없을 터다. 탈脫 아파트를 꿈꾸는 나같은 사람으로서는 참 와닿는 얘기들이었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공간 활용이나 예술적인 건축물에 대한 찬양보다는 '함께 사는 사람들의 공동 가치'에 목적을 둔 글들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얻기도 했고, 읽는 동안 내 나름의 생각을 확장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기존에 읽었던 건축에 관련한 도서들과는 결이 조금 다른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맨 마지막 '수국 마을'의 이야기와 묘지를 '가족의 집'이라고 표현한 프랑스의 시한부 묘지 제도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저자가 사는 아파트의 1층에 거주하는 겁 없는(?) 할머니가 참 좋았다.


184.
소위 트렌드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도시 상징들은 도시 공동체의 시간과 기억을 '휘발성'으로 변질시켜, 세대가 달라도 서로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것 같은 도시적 경험의 축적을 말살시킨다. (...) 거리를 점령한 화려한 간판은 강렬한 자극을 주며 시민을 집단적 기억상실증으로 이끄는 머릿속 지우개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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