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미래의 문학 10
새뮤얼 딜레이니 지음, 공보경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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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2년, 레드 가문은 우주여행이 시작되던 시절부터 사업을 해왔고, 지구에 확고하게 기반을 두고 드라코의 시스템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본 레이 역시 플레이아데스 연방 내에서 영향력이 대단한 가문이다. 그 두 가문이 일리리온 7톤을 먼저 차지하려고 경쟁이 붙었다. 우주선 '록호'의 선장 로크 본 레이는 일리리온 7톤을 레드 가문보다 먼저 차지하기 위해 신성까지 장거리 여행을 함께 할 사이보그 승무원을 모집하고, 이에 집시 출신 떠돌이 마우스, 소설가 지망생 케이튼, 쌍둥이 형제 이다스와 린케우스, 커플 세바스티안과 타이이와 그들의 애완 동물 새 여섯 마리가 합류한다. 그들은 신체의 기능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여정에 몸을 싣는다.  









소설은 로크, 마우스, 케이튼의 시점에서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진행하고, 과학 뿐만 아니라 역사, 신화, 전설,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가 어우러져있다. 정체와 변화, 사라진 국가적.세계적 연대, 그 자리를 대신한 사이비 행성 간의 전통 속에서 목표없이 부유하던 이들이 신성을 통해 얻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32세기 전全 우주적 공통된 문화 형상은 플러그와 소켓이다. 그 장치가 인간 기능의 연장선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모든 사회 계층이 받아들였다. 소켓 미설치자들은 평범하게 소켓을 달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여긴다. 주로 지구인들 중에 미설치자들이 있는데, 프린스가 소켓 미설치자라는 설정은 자칫 지나치기 쉬우나 소설이 후반부로 갈수록 로크와의 대조를 이루는 하나의 장치이기도 하다.  


작가는 클라크와 소쿠엣의 출현을 통해 현대 사회를 짚어낸다. 클라크와 소쿠엣이 출현하기 전까지 인류의 노동은 일반적으로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급료를 받았다. 하지만 노동자가 일하는 장소와 그 사람이 남은 하루를 보내는 방식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1차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점점 줄어들어서 사람들 대다수는 노동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 사이의 괴리가 점점 커져갔다. 산업혁명이 거듭될수록 그 폭의 크기는 더 커지고, 기술 사회가 크게 발전할수록 인류의 노동과 생활 방식은 돈 문제를 제외하면 직접적인 관계가 없게 된다. 인간은 일을 통해 무언가에 변화를 가하고 그 변화에 성취감과 존재감을 갖게 마련이다.  


작가는 산업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탈脫 노동화가 아닌 노동에 직접적 참여에 대해 얘기한다. 이처럼 30세기에 인류를 다시 노동하는 인간으로 설정한 것은 이 소설이 출간됐던 현대 사회의 노동이 개인의 심리적 만족과 정신적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음을 의미하며 좀더 노동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자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물론 21세기에는 그마저도 박탈당한 사람이 더 많지만). 더불어 물질 위주의 사회와 돈을 좇아 유목민처럼 살아가며, 한편으로 사회의 문화적 견고함의 결여와 이에 따른 역사와 전통의 붕괴를 지적한다. 작가는 모든 것을 융합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짚으면서 그 상징을 집시 청년 마우스의 시링크스에 두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마우스의 시링크스 연주는 음악을 듣는 것에서 보는 것, 체험하고 느끼는 것으로 확장시키며 아름다움을 더한다.   


소설에서 재미있는 소재 증 하나가 타로다. 이 타로점을 통해 로크의 앞날을 암시하는데, 그의 앞날은 곧 그와 생사를 함께 하는 이들과도 관계가 있다. 로크는 케이튼에게 상대를 이해하는 것에 대해 질문하고, 케이튼은 대대로 뿌리내려온 정신과 개인의 성장 환경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는 훨씬 앞서 마우스가 자신의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성찰과 같은 연장선에 있다. 즉 과거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 된 것처럼, 현재의 모습이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 따라서 우리가 더 집중해야하는 것은 미래의 설계에 앞서 현재의 성찰과 각성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프린스는 아무 잘못이 없는 브라이언을 죽였고, 로크는 본의 아니게 댄을 죽게 만들었다. '그들 중 누가 더 괴물에 가까울까?'라는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으려나. 소설은 일리리온을 쟁취하기 위한 인간의 욕망과 탐욕에 대한 그저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타로점에서 보여지듯 인간은 타인의 영향없이 오롯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 '영향'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  


마우스와 케이튼을 비롯한 로크에게 고용된 승무원들은 목표 없이 떠도는 존재들이었다. 로크를 만남으로써 비록 혼란스럽지만 목표와 질서를 부여받았다. 소설 속 케이튼의 말은 목적 없이 시류에 따라 집시처럼 떠도는 우리네 모습을 대변한다. 우리는 과연 인생을 제대로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들여다보고, 느끼며 살고 있을까. 


읽어왔던 SF소설과는 조금 다른 결의 작품이다. 초판이 출간된 1960년대의 사회를 반추하는듯 하지만,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삶을 영위해야할지를 이야기하면서 종단에는 다양한 분야를 접목시켜 예술과 문학로 마무리하는,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 이 재기발랄함이여.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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