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여자들 2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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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의 수석 집정관 임기로 시작하는 2권의 꽃은 카틸리나의 반란으로 인해 화두가 된 '원로원 최종 결의'다. 키케르가 수석 집정관의 직위를 이용해 카틸리나 반란에 공모 혐의가 있는 다섯 명의 로마인을 재판도 없이 사형에 처한 것이 논란의 발단이었다.  










카이사르는 키케르가 '공화국 수호를 위한 원로원 결의'에 대한 로마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재판과 법식도 없이 원로원의 승인을 얻어 반란 혐의자들을 최고속 사형에 처한 것에 분노한다. 이는 재판 없이는 유죄를 선고받지 않을 로마 시민의 절대적인 불가침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원로원 최종 결의가 최초로 생겨난 것은 단시일간의 민간 소요 사건이어었던 가이우스 그라쿠스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서였고, 이후 술라의 이탈리아 상륙과 레피두스의 반란까지 그 횟수가 적었으며, 무엇보다 최종 결의가 선포된 것은 실질적인 군사적 도발이 있어 위급한 상황이었을 때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카틸리나의 반란 사건은 군사적 도발이 전혀 없었고, 로마인을 상대로 무기를 든 자도 없었으며, 정작 사형된 이들은 공공의 적으로 선포된 상태도 아니었다. 더구나 증거로 제출된 편지는 반란의 구체적 행위에 대한 사실을 확인해준 것이 아니라 반란 공모자들의 의도가 담긴 편지에 불과했다. 결국 사실 여부에 대한 확인 없이 혐의만으로 로마인이 로마인을 사형시킨 것이다. 


카이사르가 설계한 가이우스 라비우스 재판의 목적은 가이우스 라비리우스의 처벌이 아니다. 키케로에게 로마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체가 그도 원로원도 아님을 경고하고, 로마 시민을 함부로 처형함으로써 존경과 신뢰를 잃었음을 각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카틸리나의 반란은 실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키케로가 들쑤셔 사건을 만들어냈고, 주동자인 카틸리나가 아닌 서신에 쓰여있던 공모자들을 사형함으로써 실재하지 않은 반란을 끝냈다. 마치 자작극처럼. 이는 로마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새겨졌을까.


키케르는 가이우스 라비리우스의 재판을 카이사르가 설계했음을 간파했지만, 그 의중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카이사르는 도대체 무엇을 얻고자 이런 짓을 벌이는 거며, 보니파 켈레르는 적대적인 관계가 더 어울릴 법한 카이사르에 왜 협조하는 것일까? 키케르는 자기가 사형을 집행함에 있어 저지른 오류에 대한 경고라는 것은 파악했지만, 그 이면의 목적과 여파가 어느 정도 일지는 예상치 못했다.  


새해가 시작함과 동시에 카이사르는 트리부스회를 소집해 카툴루스의 횡령을 민회에서 최고신관의 자격으로 이슈화한다. 그 다음 트리부스회에서 정치깡패들이 동원되고 카토와 비불리스는 이 폭력 사태를 카이사르의 짓으로 몰아간다. 물론 카이사르와 네포스를 노린 비불리스 패의 자작극이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포룸 로마눔에 운집한 1만 5천여 명의 분노한 군중은 표면적으로 카이사르를 지지했고, 그 이면은 '원로원 최종 결의'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폭력 혐의로 정직됐던 카이사르는 법무관에 복귀했고, 결과적으로 적들 덕분에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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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가 귀족 혈통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석 집정관임에도 그의 말에 전혀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원로원 의원은 키케로가 의심하는 에트루리아의 반란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로마의 정통성을 자랑하는 귀족(카틸리나)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라기보다 가당치 않다고 여기는 것이겠지만). 이처럼 '로마제국'은 대외적으로는 개방성을 표방하지만, 그 중심인 로마 원로원은 순혈주의를 강조하는 폐쇄적인 조직이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러한 양면성은 로마제국 곳곳에서 보여진다. 


현 법무관들에 대한 속주 배정 추첨에서 카이사르는 원하는대로 먼 히스파니아를 뽑았다. 집정관급 임페리움이 부여되며 당해 집정관들 외에는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신임 총독에게는 로마의 속주를 안전하게 지키고자 국고위원회에서 교부금이 지급되었다. 먼 히스파니아에 지급되는 교부금은 500만 세스테르티우스로 총독에게 한꺼번에 지급하며,그 돈은 즉시 총독의 개인 재산이 되었다. 운도, 신도 여전히 카이사르의 편인 듯 했다.  


카이사르가 최고신관직에 있는 동안 잠잠했던 채권자들이 그가 속주 총독으로 나갈 때가 되자 다시 압박하기 시작했다(카이사르의 어마어마한 빚은 여전한 상태였다). 평상시 서로에게 정치적 호감을 갖고 있던 피소 덕분에 카이사르는 신임 총독 교부금을 채권자에게 빼앗기지 않고 지킬 수 있었다(물론 크라수스의 빚보증도 빼놓을 수 없었지만). 사람의 인연은 알 수 없다더니 이 일이 카이사르가 피소의 딸과 결혼하는 계기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카이사르는 채권자들을 피해 아주 조용히 속주로 향했다. 


카이사르는 속주로 떠나기 전 폼페이우스와 잠깐 대면한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에게 로마에서 보니파가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음을 알리면서 개선식, 동방 정복지의 로마 시민권, 퇴역병들의 토지 등을 거부할 것이라고 얘기해 둔다. 카이사르는 알고 있었다. 폼페이우스가 진정 욕망하는 것과 내면 한켠에 자리한 자격지심이 무엇인지를, 그가 갖고 있는 양가적 감정이 무엇인지를, 그래서 그것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먼 히스파니아 속주에는 2개 군단이 주둔해 있었다. 둘다 세르토리우스와의 전쟁이 종결된 후 로마에 돌아오지 않은 노련병들로 구성된 군단이었다. 대부분 삼십대에 들어선 그들은 전투를 목말라하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속주에 도착하자마자 보조군 1군단을 모집할 생각이었고, 그들과 함께 로마가 아직 삼분의 이나 정복하지 못한 이베리아 반도의 미개척지로 나아갈 것이다.


로마는 겉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수면 아래에서는 반역자 카틸리나의 부채 탕감 공약을 침묵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많을만큼 경제적 고통을 겪는 이가 부지기수였다. 반역자의 공약이 희망이 되는 로마의 평화는 언제라도 부숴질 수 있는 유리와 같다. 


욕망의 대상이 무엇이든 욕망과 집착은 현명하고 합리적인 인간조차 그 눈을 가린다. 정치에 있어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카이사르와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의 관계를 통해 세상사는 사람이 하는 일이고, 무엇보다 사람을 얻는 것이 중요함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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