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 - 니체와 함께하는 철학 산책
장석주 지음 / 문학세계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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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딪치는 것이 두려워 위악의 가면을 쓰고 삶을 회피했던 스무 살 청년은 니체의 철학을 통해 맞서 싸우는 법을, 순응을 거부하는 법을, 삶을 긍정하고 기쁨을 얻는 법을 배웠다. 이제 노년의 문앞에 선 시인은 니체 철학이 우리 내면의 삶과 의지를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니체를 읽어야 한다고 얘기하며 글을 시작한다.  


책의 1부는 니체에 관한 기초적인 정보와 니체 철학에 대해 개괄적으로 정리했다. 따라서 책은 당연히 니체 철학을 줄기로 삼고 있고, 특히 시인의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이 책의 중요한 핵심이기에 가장 많이 인용됐다. 







 
스스로를 다이너마이트라고 선언하는 철학자 니체는 늙고 병들고 낙후되고 쇠잔해진 유럽 문명과 회복될 수 없는 형이상학을 파괴하고 새로운 창조와 생성을 도모하는 것에 앞장선다. 그러기 위해 니체가 한 첫 번째 일은 광인이 되어 신은 죽었다고 외치는 일이었다. '신이 죽었다'는 선언은, 인간이 신을 죽인 사건이다. 이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아닌 신이 살해되었음을 의미한다. 신이 되고자하는 인간의 욕망이 신을 죽인 것이다. 이는 신의 권능과 존재, 진리의 가치에 대한 부정과 닿아 있다.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이 원환을 돌며 끝없이 반복한다. 삶은 영원히 반복되는 궤도 위에 있다. 니체는 생명이 앞선 존재들의 죽음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고, 곧 니체의 영원 회귀 철학으로 이어진다. 어리석은 군중이 미몽에서 깨어나려면 번갯불이 필요하고, 번갯불이란 곧 자유정신이다. 자기 초극의 의지,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해서는 자유정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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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천민은 제 욕망에 사로잡혀 순수한 자유 의지를 잃은 채 비루한 욕망에 굴복하고 제 잇속에 따라 움직이는 야비한 자들이다. 노동으로 제 생계를 해결하고, 사회와 결속하며 제 실존의 뿌리를 사회에 내리는 건 중요하다. 노동의 숭고함은 생계 수단을 넘어 삶의 의미를 생산하는 일이다. 따라서 노동은 생명을 살리고 공동체의 생존을 도모해야 할 일이다. 대다수의 우리를 살인적 노동에 내몰리게 하는 자들이 바로 천민이다.  


몸은 정신이나 자아를 담는 그릇이 아니고, 정신의 육화이자 자아의 연장이다. 몸-신체는 힘과 의지의 장소, 도구적 이성이 발현하는 시작점이다. 숱한 질병을 달고 살았던 니체는 '질병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그는 질병을 통해 삶을 바라보고 사유했으며, 그 과정을 통해 질병은 삶의 의지를 일깨워줄 뿐만 아니라 '사유'로 인도하는 선물을 안겨준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낡아진 나'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라'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야 한다. 찰나의 행복, 사랑, 평화, 이를 삶의 꽃으로 피워내는 것이야말로 운명애이며 그게 곧 삶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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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은 대단한 행복을 추구하는 데에 있다기보다는 유행이나 어리석음을 피하고, 행복 강박증에 눌리지 않는 것, 그래서 무엇을 더하기보다는 덜어내려 애쓰며 주변인들과의 친밀함과 내재적 가치를 좇는 삶이겠다.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시인은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 온전한 자기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지 물으며, 자기의 의지로 제 삶을 세우는 일이야말로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과 힘든 투쟁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시인이 도시에서 태어난 자에게 고향은 영영 허락되지 않은 사치라고 말하는 데 무척 공감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서울에서 태어났다고 대답한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서울에 뿌리를 두고 있건만, 나는 선뜻 고향이라는 단어가 와닿지 않는다. 고향 회귀가 장소 이동이 아닌 시간 여행인 까닭에 어렵다는 말 또한 공감이 갔다. 


스스로 자유 의지도, 생의 약동도 가질 수 없다면 원숭이와 다를 바 없다. 니체는, 인간은 더 가치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지만 결과적으로 동물이 되는 길을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시인은 이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를 소환한다. 잠자의 변신은 육체에 국한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 신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실존을 확인할 수 없음을 떠올려본다면 그는 이미 동물과 다름하지 않다. '변신'에 있어서 몸과 정신의 위치를 바꾸어 놓아도 마찬가지다. 


선량함을 가장한 굴종의 노예에서 자유를 찾기 위해 순응을 던져버리고 부정(저항) 정신을 바탕으로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해야 한다. 그 유명한 니체의 낙타ㅡ사자ㅡ어린아이의 이야기를 들어 시인은 성찰의 능력을 함양해 피동적 삶이 아닌 자기다운 삶을 발명하기를 강조한다(이 부분은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말 '복서'도 같은 맥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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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떳떳하게 하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기 극복과 의지다. 뱀이 허물을 벗듯 누린 것들을 스스로 내려 놓을 수 있는 용기가 그것이다. 어제의 낡은 나를 버리지 못하면 새로운 나는 태어날 수 없고, 새로운 나는 무수한 잉여 속에서 나온다. 건강, 철학, 예술 등이 삶의 잉여다. 그 잉여는 남아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에 대한 인식, 존재를 움직이는 힘, 열린 의지를 통한 도약이다. 시인이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철학의 가난이다. 미약하나마 삶의 경이로움에 대한 발견과 자유 의지에의 고양을 원하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하고 있다.  


책을 다 읽은 나의 결론은,
가능한 한 불행에서 벗어나고,
가능한 한 굴종에서 빠져나오고,
가능한 한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을 하고,
가능한 한 크게 웃고,
가능한 한 즐거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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