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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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부터 1940년대까지 헤르만 헤세가 쓴 에세이 모음집이다. 
책과 장서, 독서, 글쓰기, 언어, 문학, 예술 등 다방면으로 책과 독서를 사랑하는 진정한 독서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말과 글과 책이 없이는 역사도 없고 인간이라는 개념도 존재할 수 없는만큼 읽기와 쓰기는 보편화되어 있지만, 그 가치를 진정으로 깨닫는 이는 소수에 불과함을 말한다. 또한 날이 갈수록 책이 많아지는 현실에서 진정한 독자라면 책의 많고 적음을 떠나 진정한 책을 붙들고 향유할 수 있어야함을 당부한다.  









 
세상의 그 어떤 누구보다 작가에게 더 많은 일거리를 안겨다주는 이들은 다름 아닌 동료들이라고 말하면서, 보내오는 글에 대한 검토와 평가 그리고 호의적인 서평이나 추천사 등에 대해 언급한다. 이 부분에서 현재 신간이 나올 때마다 'OOO 추천사'라는 수많은 문구가 떠올랐는데 그들도 헤세와 비슷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더라는. 


헤세가 젊은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야말로 뼈 때리는 충고다. 헤세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더 명확히 알아가고 체험의 힘을 고양하고 양심의 날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한은, 문학장착을 계속하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이 충고는 굳이 작가가 아니더라도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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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가 말하는 비평가들에 대한 서술이 인상적이다. 진지한 자세나 객관적인 관심, 하다못해 정신의 문제에 대한 열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들(헤세는 2류라고 칭한다)의 비평은 애정도 책임감도 없다고 일갈한다. 진정한 비평가란 자기가 구사하는 언어와 친숙하여 오용하는 법이 없이 살아있는 글을 쓴다. 비평가에게 열정이 있다면  자기의 주관성과 개인적인 기질을 억누르지 않고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따라서 비평가는 독자적인 개인으로 서야 하는데, 무능한 비평가들의 결함은 정작 본인도 제대로 못봐 제대로 묘사할 줄 모르고, 자신의 개인적인 직관을 믿지 못해 객관성을 빙자하면서 균형과 중립이라는 가면을 쓴다고 지적한다. 헤세가 무엇보다 경멸하는 것은 문학비평에 있어 정신분석 혹은 심리학을 들이밀어(그에 대한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섣부른 분석을 통해 시사비평을 학문성으로 위장하며 편한 길로 가려 하는 점이다. 인문학을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인문학 본래의 방법과 체계를 가지고 추진해야한다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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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야말로 '독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헤세는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와 사고방식을 접해 그것을 이해하고자 노력구하고 그를 친구로 삼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무분별하게 읽어내기보다는 마음에 와닿는 책들, 깨달음과 기쁨을 안겨주는 작품들을 가려 읽으며 찬찬히 모으라고 얘기한다. 이는 친구를 사귀는 이치와 똑같고, 장서에 있어 권수와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하면서. 독서를 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원칙은, 읽는 글에 대한 경의, 이해하고자 하는 인내, 수용하고 경청하는 겸손함이다.  


최대한 많이 읽고 많이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좋은 작품들을 통해 타인들이 생각하고 추구했던 깊고 넓은 세계를 감지하고 인류의 총체와 공명하는 관계를 맺는 일이야말로 인생의, 독서의, 진정한 의미다. 또한 많이 읽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평생 몇 권의 책만 끼고 살아도 진정한 독자로 사는 이들이 있다. 헤세는 수준 높은 독서훈련은 신문이나 유행문학들이 아닌 오직 양서들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걸작들의 가치를 검증하기 전에 먼저 우리 스스로가 자격을 갖추어야한다고 얘기한다. 


재독이야말로 책의 진수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두 번을 읽은 책이라면 책값이 만만치 않더라도 반드시 구입하라고 조언한다. 최우수 도서(혹은 작가) 100선 같은 건 세상에 없으며 절대적으로 정확한 비평이란 것도 없다. 다만 독자가 꼭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편견이나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헤세는 독자의 세 가지 유형에 대해 얘기하는데, 첫번째는 순진한 독자, 책이 이끄는대로 따라가는 독자다. 두번째는 작가를 추적하는 독자이고, 세번째 유형의 독자는 무엇을 읽든 완전히 자유로운 태도로 대하는데, 이미 온 세계가 내면에 들어와 있어 굳이 독서를 필요로 하지 않는 독자다. 헤세는 이 유형이 독서의 단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단계를 밟아 세 번째 유형에 도달하는 것이 아닌, 이 유형을 유기적으로 오가며 반복하는 게 옳다고 얘기한다. 더불어 소장도서의 정리와 분류 체계를 만들어 유지하고 손보는 것까지 세세하게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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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가 특이 소설의 작가로서 꼽는 이는 애드거 앨런 포다. 그외에는 대체로 인색하게 평가하는데, 스위프트의 작품은 <걸리버 여행기> 외에는 받아들일 만한 작품이 없고 그마저도 본질적이라기보다 영리하게 선택된 가면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쥘 베른(나, 쥘 베른 좋아하는데)과 허버트 조지 웰스는 그저 오락문학 작가에 불과하다고 혹평한다(난 그래도 웰스의 '우주전쟁'은 읽어보련다).    


헤세는 창작과 사고가 같은 맥락이며 문학의 과제가 세계관을 기술하는 것이라는 의견은 심각한 오류라고 지적한다. 아무리 위대하다해도 예술창작을 부정하고 멸절시키는 추상적인 사고는 위험하다. 물론 작가가 자기 나름의 세계관을 가질 수 있지만 추상적 인식이 그 핵심이 되는 순간 예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길은 형상으로 나아가며, 신비주의 사유자의 길은 무형으로 귀결되기에 이 두 가지 길을 동시에 이루려고 한다면 모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헤세는 이 이야기 끝에 젊은이들을 향해 조언한다. 개인의 최고 자유는 인류의 한 부분인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여 얽매이지 않는 정신으로 인류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그런 자각이 없는 개인의 자유는 하찮고 사소할 따름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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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는 예술작품에서 진실성과 신의, 정확성과 치밀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대 사회의 빠른 흐름이 대충주의를 용인할 명분이 되지는 않는다. 큰일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사소한 일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 당연시하는 태도는 쇠퇴의 시작이다. 그러니 사소한 일, 당장에 맡은 일에 성심을 다하라.   


헤세가 들려주는 얘기를 읽다보니 얼마 전에 읽은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가 떠올랐다. 헤세는 나보코프처럼 문학을 예술에 아주 밀접하게 놓고 서술한다. 어쩌면 그는 문학 뿐만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삶 역시 한편의 예술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헤세는 이 책에서 재독을 강조한다. 뜻하지 않게 재독을 했는데, 독서 뿐만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깊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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