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이야기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4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박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중.단편 소설집이다. 제목에서 보여지듯 공포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 이 공포는 인간 내면의 정서와 닿아 있다.  









[실종]은 하루 아침에 느닷없이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거동이 불편한 노부, 업무차 외출했던 변호사, 피로연에서 사라진 신랑, 스승의 심부름을 갔다가 행방이 묘연해진 젊은 의사, 해외 출장 도중 연락이 두절된 가장. 작가는 앞에서 언급한 이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형사 경찰 시대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범죄 수사에 대한 인식이 부재했던 시대에 발생한 가해자와 이를 악용한 이들을 꼬집는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실종된 아버지보다 장성한 아들이 더 괘씸하더라는. 


ㅡ 


실린 작품 중에서 고딕소설에 가장 부합(으스스 하다)하는 [늙은 보모 이야기]. 이 기괴한 사건의 배경에는 버림받은 여성이 존재하고, 이에 따른 모든 고통은 여성들이 감당한다. 가해자는 분명 두 여성을 농락한 남성임에도 죽는 순간까지 원망하는 대상도 여성이고, 죄책감도 여성이 안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가혹한 운명으로부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그는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마지막, 퍼니벌 부인이 젊은 시절 저지른 일은 나이 들어 절대 되돌릴 수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죽어가는 장면에서 비단 그녀만의 일은 아닌듯해 안타까움이 컸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음악가와 더불어 가장 밉상 캐릭터는 [대지주 이야기]의 히긴스다. 그나마 탐욕과 허영의 끝을 보여주는 히긴스는 죄의 대가를 치뤄서 다행이라고 해야하는지 어쩌는지... . 그나저나 '하얀 집'에 세들어 그 (탐욕)의 벽장을 찾아볼 의향이 있는지 묻는 작가의 질문에, 정중히 거절의 뜻을 드린다.  


ㅡ  


개인적으로 실린 작품 중 최고라고 꼽는 [빈자 클라라 수녀회]. 불과 100쪽이 채 안 되는 분량의 소설이지만 세대를 엮은 촘촘한 스토리가 인상적이다. 브리짓 - 메리 - 루시로 이어지는 삼대의 비극적 운명. 이 작품에서도 죄는 남성이 저저르고, 그 대가는 세대를 초월해 여성이 치르면서 동시에 또 다른 가해자가 되며, 이를 해결하는 사람 역시 여성이다. 


폭동이 가라앉고 얼마 후 클라라 수녀회에서 날카로운 종소리가 울리자, 수녀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음을 알게 된 사람들은 저마다 양손에 먹거리를 들고 수녀회를 향히 긴 행렬을 다급히 이어간다. 이 장면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면 뭉클한 감정이 올라오는데, 그야말로 감동적이다. 자신의 분노와 증오, 그리고 죄책감을 고해하듯 나지막히 읊조리며 눈을 감는 그의 모습에서 나 역시 안식을 빌게 된다.   


ㅡ 


[그리피스 가문의 저주]도 세대를 잇는 서사를 그리고 있다. 예언과 참혹한 저주, 오랜 세월이 흘러 소멸됐다고 믿었던 저주의 부활과 부자父子의 갈등(여기서 부자를 이간질하는 존재가 계모라는 설정은 마뜩치 않지만), 그리고 예언의 마지막 실현. 문득, 어린 시절 상실감을 느낀 아버지의 일방적인 애정에서 벗어난 이후 가족으로부터 환대의 경험도, 위로와 이해의 경험도 없는 오언에게는 네스트의 가식적인 환대도 남다르게 다가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애잔했다.   



[굽은 나뭇가지]는 읽으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소설이다. 소설 초반에는 비록 늦은감이 있지만 첫사랑의 결실을 맺은 네이선과 헤스터의 따뜻한 이야기이기를 바랐다. 조카딸 베시를 데리고 왔을 때까지만 해도 앞선 작품들이 내내 긴장감이 넘쳤으니 이번에는 따뜻한 애정이 가득한 소설이리라 짐작했거늘... . 네이선과 헤스터를 향해 자식을 잘못 키웠다고 비난할 수 없다. 다정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그들의 삶 자체가 좋은 본보기였음에도 엇나간 아들은 어째야 할까.  



[궁금하다, 사실인지]의 도입 부분은 기이함에 바짝 긴장을 하게 되는데, 서너쪽 넘기면 바로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어두운 밤에 트루 지역의 들판에 홀연히 서있는 성 한 채. 환대를 해주는 문지기를 따라 들어간 성 안의 살롱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를 읽다보면, 독자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익숙한 인물들이자 대화 내용이다. 이 유쾌한 상상력이라니. 고딕 이야기 마지막에 이토록 환상적인 작품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ㅡ  


일곱 편의 소설은 인간이 갖는 불안과 공포, 분노와 증오, 사랑 등 인간의 내면을 다루고 있다.  


사랑은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해서 정의하기에 쉽지 않다. 소설 속에 등장한 여성들은 상대 남성과 사랑에 빠지고 서로에 대해 깊게 알아볼 새도 없이 결과를 얻으려고 한다. 여성에게 상속의 권한이 없었던 빅토리아 시대에 결혼이 곧 생계 수단이자 사회적 지위가 되는 여성이 부딪쳐야할 벽을 감안하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른 관점에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욕망과 탐욕에 눈이 멀어 본능대로 일을 저지른 남성들은 한발짝 물러나 방관할 뿐이다. 그래서 때로는 서로를 증오하고, 때로는 서로를 측은해하며, 때로는 연대하는 여성 인물들의 모습에서 읽는 동안 적잖이 감정의 롤러코스트를 탔다. 작가는 진정한 사랑과 그 사랑이 뒷받침 된 선행이야말로 가치있는 행동임을 얘기한다.   


이 소설에서 정말 공포스러운 존재는 억울하게 죽은 원혼도, 갑자기 실종된 이들도 아닌 인간성을 상실한 채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