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조건 - 철학이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오사 빅포르스 지음, 박세연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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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철학 분야의 교수인 저자가 지식과 언어, 사실(진실)과 거짓, 사고와 교육 등을 철학적으로 접근해 거짓과 왜곡이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교란시키고 혼란에 빠트리는가를 짚어내며 앞으로 우리가 좀더 깊게 숙고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2016년 미국 대선과 당시 당선된 대통령의 사례를 자주 들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지난 대선 또한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를 치른만큼 공감하는 바가 있다. '사실fact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은 지식의 저항, 왜곡된 사고, 거짓말과 선전, 교육 현장 등에 대한 원인과 그에 따른 현상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사람들이 거짓을 믿고 계속해서 그 믿음을 고수할 수 있는 이유는 믿음을 대부분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기 때문인데 부적절한 교육, 신뢰하기 힘든 여론, 무지한 친구, 정치 선동가 등으로 얻는 정보들이 그렇다. 그리고 재능과 무관하게 누구도 이에 저항하기 어렵다. 무지는 비판적 사고 능력에 영향을 미치며 악순환의 고리를 빠르게 형성한다. 타당한 반대 증거가 있음에도 잘못된 뭔가를 계속해서 믿는 이유도 이와 같다. 이는 편향 혹은 인지 왜곡의 악순환을 부른다. 따라서 저자는 칼 포퍼의 이론을 예로 들며 우리가 자신의 믿음이 참임을 입증하기 보다는 거짓임을 입증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로막는 심리적 기제 중 하나는 '의도된 합리화'다.  믿을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우를 일컫는데, 이는 자신의 믿음이 위협을 받을 때 발동하는 무의식 기제다. 우리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적 이념적 집단의 믿음과 일치하는 믿음을 고수하길 원하고, 무의식적 차원에서 이를 위해 믿음을 재확인시켜주는 증거만을 받아들인다. 여기에는 편승 효과도 한 몫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성향을 말하는데, 주변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때 편안함을 느끼고, 그렇지 않을 때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다른 또 하나는 내집단 편향. 자신의 집단에 속한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성향을 말한다. 예를 들면 피해자가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동정 여부가 결정되는 것을 들 수 있다. 양극화가 재앙인 이유는 상반된 입장에서 선 사람들이 서로를 멀리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수록 우리가 진실에 도달할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지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전에 비해 더 많은 지식을 가졌으나 동시에 세상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유형의 무지, 즉 근거 없는 잘못된 믿음과 믿음의 부재가 존재한다. 우리는 자신이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주제와 관련해 우리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 역시 인지 왜곡 중 하나다. 페이스북 출현 이후 검색 엔진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콘텐츠 공유가 수월해지면서 범위는 확대되어 갔고, 공유되는 콘텐츠의 진실 여부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클릭 경제와 필터 버블의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이는 내집단 편향을 강화시켰다.  


여기에는 음모론도 빠질 수 없다. 음모론의 특징은 종종 적절하게 설명되지 않은 사건의 특정 세부 사항을 강조하고(예 : 1969년 미국의 달 착륙), 근거를 약화시키는 공격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허위 입증을 견대낼 수 있도록 설계된다는 것인데, 만약 음모에 반하는 결정적 증거가 등장하면, 이 증거가 음모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함으로써 즉각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음모론을 공고히 만드는 데 기여한다. 음모론이 번성하기에 온라인은 최적화되어 있다. 우리는 온라인 상에서 접하는 수많은 정보들이 독립된 출처를 갖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 이들 출처가 모두 동일한 정치적 목적을 공유하는 소수의 출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가짜 뉴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확한 뉴스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려되는 현상은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전체주의 국가의 선전과 아주 흡사하다. 가짜 뉴스와 가스라이팅의 목표는 시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지도자를 따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진실과 이성에 대한 시민들의 믿음을 약화시키고, 세상에 대한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저자는 전체주의를 상기시키는 가짜 뉴스와 가스라이팅의 가장 파괴적인 대항 무기는 역선전이 아니라 증거와 객관적 진실, 사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우리는 비판적 사고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유형의 인지 능력이 요구되는지에 대한 분명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판적 사고 요구가 현실을 둘러싼 싸움에서 또 하나의 무기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해야 하며, 이러한 노력은 학교에서 시작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는 비판적 사고 교육에 점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크게 달라지지 않는 입시 제도, 학습 콘텐츠의 부족 등 교육 현장에서 갖는 한계는 분명해 보인다.  



개인적으로 교수법의 지지 여부를 차치하고, 어떤 교수법이든 창의와 사고는 기초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교육의 한쪽 측면에서는 지나친 구성주의로 수업을 이끌어 기초 학습이 부족한 경우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주입식 교육으로만 수업이 채워져 수동적으로 학습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일관되지 않은 교육 목적으로 인해 생기는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의 몫이다. 무엇보다 교육 목적에 있어서 우선해야 할 것은 가치와 평등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교수법은 없다. 어떤 가치를 두고 교육을 할 것인지와 국가 내 어디에서든 평등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말하고자 얘기가 여기까지 흘렀는가. 학습 과정에 있어서 의미를 이해하고 비판적 사고를 위해서는 사실적 지식이 필요하다. 이는 앞서 말했던 현대 사회의 환경에서 비판적 사고를 함양해야 한다는 점과 이어진다. 이론적 지식, 이해, 기억 능력이 우리가 사고하는 데 영향을 미치며 이는 어린 시절부터 학습되어지는 것과 연관이 있다.  



인지 왜곡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존재했고,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의 일부다. 거짓말과 선전 또한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성적 주장과 과학에 대한 믿음에도 언제나 이의가 제기됐다. 그러나 양극화, 분열, 인지 왜곡, 거짓 정보, 포퓰리즘은 그 정도를 더해가고 있고, 해결책도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 요소 중 하나라도(그 이상으면 더욱 좋고) 바꿀 수 있다면 최악의 상황을 어느 정도 진정 시킬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 희망을, 위험과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뭔가 시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두고 있다. 더 나은 사고와 인지 왜곡으로부터 벗어나 정상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중요한 요소ㅡ비판적 사고, 출처 비평, 전문가의 역할, 팩트 체크ㅡ를 들고, 이것들을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상반되고 서로가 진실이라고 주장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지쳐 진실과 이성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게 된다. 저자는 이에 대한 대안을 6부에서 제시하는데, 개인적으로 여기에 한 가지만 더 보태자면, 아무리 강하게 확신하더라도 내가 '틀릴 수 있다'라는 인식이다. 지나친 자기 검열도 문제지만, 과도한 자기 확신도 오류가 될 수 있다.  


책 전반에 걸쳐 철학자의 시선에서 현실적 사례를 들어 사회적.정치적 문제를 해석하고 있다. 언급한 가짜 뉴스, 거짓 정보, 가스라이팅 등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그에 대한 문헌도 적지 않으나 5부, 6부에서 제시된 내용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고 숙제로 남았다. 늘 그렇듯 실천적 행동이 따라야함은 당연하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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