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3월
평점 :
품절



최근 몇 년간 여러 SF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생각은 허버트 조지 웰스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것이었다(특히 아직 읽지 않은 '우주 전쟁'). <투명인간>은 M출판사 판본으로 10년도 훨씬 전에 읽고 이번에 아주 오랜만에 다시 펼친다. 어디에서든 개정판이 나오길 바랐던 작품 중 하나였는데, 출간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다.   









소설은 오로지 개인의 부와 명성이 목적이었던 한 과학자가 탐욕으로 인해 몰락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의학에서 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꾼 그리핀은 자신이 목표하는 연구를 진행하던 중 색소 문제를 다루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생물학을 통해 모든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세포조직을 무채색으로 만들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 연구가 성공만 하면 부와 명성을 한번에 거머쥘 수 있건만, 열악한 연구비 지원 사정으로 수 년간 몰두했던 연구를 완성할 수 없게 되자 아버지의 돈을 훔쳤고, 그 사건은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이쯤에서 자기의 잘못을 깨달았으면 좋았겠으나 그리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연구 성공 후 찾아올 모든 것을 혼자 독차지하기 위해 그리핀은 동료들과 연구 과정을 공유하지 않았고, 고립된 실험은 그를 피해의식과 위기감 속으로 빠져들게 했으며, 연구와 이에 따른 비용까지 모두 혼자 감당해야 하는 그는 점점 더 예민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마침내 연구는 성공했으나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이는 그가 돌아갈 곳을 스스로 없애버린 셈이 되었다.  


투명인간이 되고 의기양양했던 처음과는 달리 얼마지나지 않아 자기가 주도적인 입장이 아니게 되어버린 현실에 부딪친 그리핀. 누군가에게 인지되지 않는 존재가 자유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역으로 보호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음을, 타인과 상호작용이 불가능해졌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타인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 그의 말을 귀담아 들어줄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다. 자기가 보통 사람과 다른 처지에 놓여있어 어쩔 수 없고, 모든 폭력은 정당방위라는 정당성과 명분을 만들기에 급급할 뿐 진정성있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식사 한 끼 편하게 할 수 없는 처지임을 각성하고서야 투명인간이 되는 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깨달은 그리핀을 보면서 미다스 신화가 생각났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지만, 정작 제 손으로 빵 한 조각 먹을 수 없었던 왕. 그나마 미다스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원래대로 돌려놔달라고 신에게 호소하지만, 그리핀은 몇 차례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제발로 그 기회를 걷어차버렸다. 여전히 자기만이 모든 것을 되돌려놓을 수 있다는 오만과 광기만 남은 과학자는 미치광이와 다름하지 않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섬뜩한 부분은 그리핀의 진짜 목적이다. 투명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어 그 공포를 이용해 사람들을 지배하겠다는, 한 마디로 신이 되겠다는 지점이다.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겠지만, 사실 현재 정치권에서 가장 흔하게 이용는 방법 중하나가 아닌가. 무엇보다 누군가를 지배하고자 했던 그리핀이 정작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그 광기에 지배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음을 간과하고 있다. 그에 대한 연장선으로 이 소설에서 의미있는 다른 장치는 처음부터 단 한번도 실체를 볼 수 없었던 그리핀의 모습이 드러나는 시점이다. 보이지 않는 위험한 존재에서 보이는 평범한 사람으로의 귀환. 우리는 무엇을 더 두려워하고 있을까. 


그리핀에게 있어 결정적 기로는 켐프와의 우연한 만남이다. 켐프는 그에게 외로운 늑대가 되기를 자처하지 말라고, 세상에 비밀을 털어놓고 조력자를 얻어 문제를 해결하라고 충고한다. 그리핀이 만약 켐프의 충고를 받아들였다면, 그의 결말은 충분히 달라졌을 것이다.  


내가 만약 켐프라면 크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소설에서 그는 한때 대학 동문이었고 현재 자신을 의지하는 그리핀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범죄와 폭력을 저지른 그를 신고해야 하는가를 두고 갈등한다. 만약 켐프의 갈등이 그리핀의 히스토리를 알 수 없는, 마치 핍박받고 소외된 소수자 혹은 사회 약자층으로 비춰진 소설 초반에 던져졌다면 그의 심정을 납득했을 것 같으나, 이미 숱한 범죄를 저지른 대상을 두고 해야할 고민은 아닌 듯 하다. 


그런데 소설을 덮고 다시 든 생각은 초독 당시 내가 느꼈던 바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때는 소설 초반에 감상이 집중되었던 기억이 있다. 이방인에 대한 경계와 근거없는 의심,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정사실화한 핍박에 무게를 두었던 것 같다. 이는 아이핑으로 흘러들어온 까닭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그리핀의 의도때문일 터다.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만약'이라는 가정은 투명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그가 연구를 끝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면, 그래서 사냥감을 몰듯 그를 다그치지 않았다면, 그리핀의 분노가 그처럼 가중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악의가 악의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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