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계획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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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일본 최고의 스키점프 선수 니레이 아키라가 사망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사인은 독극물 중독. 부검 결과 독극물은 아코니틴, 맹독이다. 니레이가 평소 복용하는 비타민제 중 다섯개의 캡슐에서 독극물이 검출되면서 이 죽음은 사고가 아닌 살인사건으로 규정되어 수사가 시작된다.  


형사들이 탐문한 결과 니레이의 부탁으로 비타민제를 보관하고 있던 레스토랑은 오전 9시부터 9시 40분 동안 직원이 없는 상태이고, 문을 잠그지 않은 채로 두기 때문에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매끄럽지 않다. 독극물이 검출된 비타민 캡슐은 총 여섯 개. 니레이를 빨리 죽이고 싶었다면 어떤 캡슐을 먹을지 모르니 전부 독극물 섞어놓아야 하는 게 맞다. 그리고 독극물을 섞어놓은 시각을 확정하기 쉬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독극물 캡슐을 이렇게 어정쩡한 갯수로 만들었을까? 뭔가 딱 떨어지지 않는다. 










소설은 중반이 되기도 전에 범인을 확정해 놓고 서술한다. 독자가 추론해야 할 것은 범인이 아닌 범인의 살해 동기와 범인의 트릭에 속아 넘어가지 않은 밀고자다. 소설 속 범인은 독자와 함께 그 밀고자를 찾고자 추리를 시작하는데, 소설은 형사의 수사, 범인의 추리, 그리고 소설 후반부에 새롭게 대두되는 제3의 밀고자 등 마지막까지 물음표를 놓지 않는다. 



결론을 놓고 본다면 1등 지상주의에 대한 작가의 일침이다. 특히 성적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운동 선수에게 도핑은 끊임없는 유혹이 될 것이다(이 소설은 절대 도핑에 관련한 소설이 아니다). 하필이면 얼마 전 폐막한 동계올림픽에서도 도핑 사건으로 올림픽 기간 내내 시끄러웠고, 도핑도 도핑이지만 그 선수를 지도한 코치의 지도 방식이 더 비난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이 운동선수 뿐인가.  


주변에서 입시생을 둔 지인들은 아이가 에너지음료를 과다섭취하는 것 같다고 걱정하면서도 그냥 걱정에서 끝난다. 에너지 음료 대신 고강도 비타민이나 영양제를 제공하며 이 시기만 잘 넘기라고 할 뿐 좀 쉬어가라고 말하는 부모를 본 경우는 거의 없었다. 부모들 말대로 그 고행이 예정된 기간 안에 끝나면 다행이겠지만, 딱히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다. 입시, 재수, 반수를 거쳐 취업과 승진 전쟁까지. 이 기나긴 여정에서 늘 1등만 할 수도, 이기기만 할 수도 없어 더 딱한 노릇이다. 



소설에서는 스포츠계의 다양한  형태의 '킹메이커'들이 등장한다. 스키점프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부모를 여읜 니레이를 훈련시키고 돌봤던 당숙 후지무라,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니레이에게 모두 쏟아부으며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절대 일인자로 만들고 싶어했던 미네기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수만 있다면 인간성 따위는 서슴없이 버릴 수 있기에 아들 쇼의 개성은 무시해버리는 스기에 다이스케.  


그런데 이렇듯 자기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허위의 욕망덩어리들 앞에, 도대체 판단이 서지 앉는 순수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 등장했으니 그가 니레이다. 그는 1등도, 명예도, 돈도 관심없다. 오로지 하늘을 나는 그 순간을, 더 멀리 더 높이 나는 것을 욕망할 뿐이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니레이의 욕망을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다만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공동체 사회에서 그의 관심은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이다. 악의는 없으나 동료의 상실감을 공감할 줄 모르고, 상대의 성취에 축하해 줄지도 모르는 공감능력의 결여는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미숙한 차원을 넘어선다. 그가 자신이 실질적, 감정적 대용품이 되어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스포츠 과학을 표방하면서 선수들의 훈련과정을 면밀히 분석한다고(상식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다음과 같은 질문은 시대착오적일 수 있음에도 한 번 던져본다. 과학을 이용한 승리와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패배 중 어느 것에 더 가치를 두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물음은 비단 스포츠 뿐만이 아니다. 진정한 삶의 질이 무엇인지를 화두로 삼는 요즘, 이와 유사한 질문은 분야와 소재만 바뀔 뿐 늘 우리에게 의문으로 남는다.  



"스포츠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오로지 승리뿐이에요. 관중들도 비인간적인 강함을 원한다는 뜻입니다. 서울 올림픽에서 벤 존슨은 도핑으로 금메달을 박탈 당하고 세상의 비난을 받았지요? 하지만 그 비난도 잘난 원칙주의에서 나온 것뿐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왜 검사에 걸리는 바보짓을 했느냐고 이를 갈고 있어요." (p369) 



2022년 현재, 1989년에 집필한 소설의 인물인 스기에 다이스케가 한 이 말에 무게를 실어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결과지향주의에서 온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작가가 스키에 진심이라는 얘기를 어디에선가 읽었는데, 정말 그렇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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