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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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 지역 주민 일부가 서기 8세기 중엽 해외로 나간 것을 기점으로 바이킹 시대가 시작됐다. 이들이 해외로 나간 이유에 대해서 연구자들은 정치적 변화가 중요한 요인일 것이라고 추론한다. 지배층들의 권력 강화, 조선술과 항해술의 발전이 더해져 바다로 시선을 돌렸을 것이라는 짐작해 볼 수 있다. 바이킹은 민족의 정체성이 아니라 특유의 삶의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떠돌아 다니며 약탈 공격을 하는 등 삶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적 방식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러나 그들이 단순히 약탈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광범위한 지역으로 팽창해 나가며 그 지역에 영향을 미쳤고 교역 활동에도 능했다. 
 
 
약 300년 동안 지속된 바이킹 시대가 저물고 북유럽 지역과 북해는 비교적 평화로웠고, 어업과 해상 교역도 순조롭게 발달했다. 청어와 대구 종류가 중요한 식량이 되면서 북유럽 어업 혁명이 일어났고, 교역이 살아난 것이다. 12세기에 북부 독일 도시 상인들이 북해의 오래된 해상 교역로들을 활성화시켰고, 이들은 스코틀랜드에서 러시아까지, 프랑스 북부에서 스칸디나비아 지역까지 상업 네트워크를 확대했다. 여기에 이웃 지역 상인들도 참여했는데, 이때 교역을 주도한 상인들과 도시들이 공동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 상호 협력하는 한자 동맹을 형성했다. 모임 수준에 가까웠던 한자 동맹은 1300년 중엽에 이르러 한자 도시들의 동맹으로 격상하면서 한자 대표들이 이루어낸 결정은 동맹 전체 의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 동맹은 300여년 동안 지속되다가 1614년에 정식으로 한자 공동의 법령을 제정하지만 이 시기는 이미 한자 동맹이 쇠퇴기에 접어든 때였다. 
 
 


바이킹이 단순한 폭력성이 강한 약탈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던 바는 아니지만 상당한 넓은 범위까지 활동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세력이 3백년이나 지속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교역 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된다. 오래 전에 읽은 책에서 대구가 경제와 외교를, 즉 인간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 문헌에도 이 부분을 짚는다. 문득 우리나라 동해에서 사라진 명태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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