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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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이슬람권과 해상 루트를 통해 직접 연결되는데, 당대에 이르러서 인도양 네트워크에 본격적으로 편입하고 15세기 명대 초에는 해양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다. 7세기 중국 남부에는 판관의 통제 아래 샤리아를 따라 살아가는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중국 당국은 이를 허용했다. 당시 남부 여러 지역에 번영하는 이슬람 공동체들이 잘 유지되었다. 광저우의 경우 약 천여 명의 페르시아.아랍 상인들이 살고 있었고, 이곳의 랜드마크는 화이성 모스크다. 중국과 이들이 조화로운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같은 가치의 공유와 상호 신뢰가 근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8세기에 시박사 제도가 도입된 후 심각한 부패가 발생하고 이로인해 부당함을 느낀 외국 상인들의 봉기와 그로인한 학살 사건이 일어난다(이때 첫 봉기와 학살의 배경이 된 사건이 '안사의 난', 두 번째가 '광저우 대학살' 사건이다).  
 
 
황소의 난 이후 광저우가 황폐화되고 당이 몰락한 후 중국이 정치적.군사적으로 혼돈을 겪는 동안 무슬림 상인들은 중국을 떠나 동남아시아로 갔다. 이 시기에 아랍.페르시아 세계 또한 거대한 혼란에 빠졌다. 이 두 세계가 다시 안정된 후 교역이 재개되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일부를 제외한 무슬림 상인은 동남아시에 근거지를 두고 중국을 멀리에서 연결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직항로 대신 분절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중국과 아랍-페르시아 선박은 중간 지점인 동남아(칼라반도)에서 조인해 중개 교역을 이어갔다. 
 
 

세계 4대 문명 중 현재까지 그 위세를 떨치는 나라가 중국이다. 그들이 이토록 장구한 세월 동안 위기를 겪으면서도 그 세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수용'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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