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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평점 :
오스만은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소멸되었다.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무 장관 아서 제임스 밸푸어가 이후 밸푸어 선언이라고 불리는 문서를 발표한다. 이 선언의 내용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본거지를 수립하는 것을 찬성하고,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겠으며, 현재(당시) 팔레스타인에 사는 비유대인 공동체의 시민적.종교적 권리나 지위가 침해되는 일이 없을 것임을 밝힌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전에 유수프 디야의 선견지명이 눈앞에 도래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팔레스타인 전체에 유대 국가를 세워 주권을 확보하고 이민을 통제한다는 헤르츨의 목표에 대한 지지 표명이었다. 당시 압도적 다수의 아랍 주민들을 '집단'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마치 유령같은 존재로 치부한 것이다. 영국이 유대인에게 성서의 땅을 돌려줌과 동시에 영국으로 유입되는 유대인 이민을 줄이려는 반유대주의적 기대가 의도되었음은 명백하다. 더구나 애매모호한 문구 사용으로 시온주의자들과 영국 정치인들은 자기들끼리 확대 해석했다. 저자는 이 선언문이 팔레스타인 (아랍)원주민들에게 총구를 겨눈 선전포고였다고 말하는데, 이후 정치 상황을 보면 그야말로 총소리 없이 방아쇠가 당겨진 셈이다.
문제는 전쟁 막바지였던 팔레스타인의 대응이 늦었다는 점이다. 거의 1년이 지난 1918년 12월이 되어서야 영국 외무부에 항의 편지를 보냈다는데, 사실 그 이면에는 유대인 인구수가 극소수에 불과했기에 밸푸어 선언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았을 것이라고 저자는 짐작한다.
- 오스만 제국의 몰락으로 서구가 중동과 아랍 사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봤을 때 오스만 제국은 '그들만의 전쟁'에 끼어들지 말았어야 했다. 불행의 문이 본격적으로 열린 사건은 1917년 11월 벨푸어 선언이다. 시온주의자들 입장에서 영국의 의도가 반유대적 사고에 기인했든 아니든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는 최대의 명분이 주어진 것이다. 물론 저희들끼리 만든, 납득도 안 되는 명분이지만. 오스만의 제국주의 식민 시대를 지지할 수는 없지만, 제국의 붕괴가 초래한 결과는 중동과 아랍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아이러니는 역사의 양면성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6백여년을 제국 신민으로 살아왔던 그들에게 정치적으로 아무런 준비없이 던져진 민족 독립이 어떻게 다가왔을지, 그래서 늦어질 수 밖에 없었던 대처가 이해되는 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