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 개의 작품이 연작 형태를 이루고 있는 소설은 1904년부터 1981년까지 30~40년의 간격을 두고 진행한다. 소설은 신의 존재와 신앙, 사랑과 연민,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주제를 꼽으라면 '상실'이다. 각 장章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실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무림친다. 어떤 이는 상실의 아픔을 죽음으로 승화하고, 어떤 이는 상실을 초월하는 위로와 교감이, 어떤 이는 상실보다 더 참담한 고통이 있음을 깨닫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들의 인연의 시작은, 연인과 아들과 아버지까지 연달아 잃은 토마스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율리시스 신부의 십자고상을 찾아나서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선교사로서 아프리카 땅에 도착한 율리시스 신부는 식민지에서 선교하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성직자답게 자신의 소임을 성실하게 수행하지만, 원지민들을 폭압하고 학살하는 문명인의 모습에서 회의를 느끼면서 선교 활동에 낙관과 위로를 찾지 못한다. 그는 이에 대한 고통을 투영한 십자고상을 완성하고, 이 조각품은 이후 포르투갈의 어느 한 교회에 소장되어 있다. 율리시스 신부의 선교 생활은 토마스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아가는 과정과 닮아 있다. 이방인이 되어 식민지의 원주민들과의 교류는, 토마스가 자동차를 끌고 지나는 마을마다 만나는 사람들과의 상황과 유사하다. 식민지에서 자만으로 가득찬 문명인 제국주의자는 토마스 자신과 자동차에 비유되며, 토마스가 낮잡아 봤던 작은 시골마을(호즈마니냘)은 식민지와 같은 선상에 있다. 저자가 묘사한 상투메의 모습과 율리시스 신부의 한탄은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을 연상케 한다. 마침내 고난의 여정을 끝낸 토마스의 앞에 나타난 십자고상은 그의 예상과 아주 달랐고, 더불어 자신이 부둥켜 안고 있었던 아픔은 이제 또 다른 누군가도 겪게 될 터였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이 고통의 고리는 끝나지 않는 걸까.



개인적으로 마음이 쓰였던 내용은 [제2부 집으로]였다. 이 장은 거의 대부분 두 명의 마리아라는 여성(여성의 이름이 둘 다 마리아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사이사이 에우제비우가 질문을 던지기는 하지만). 첫 번째 등장하는 마리아는 병리학자이자 의사인 에우제비우의 아내다. 그는 특별한 용건도 없이 일하는 중인 남편을 찾아와 '애거서 크리스티'소설에 대해 한참을 떠든다. 모든 죽음은 살해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의 살해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바로 자신의 죽음이며 그게 우리의 운명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자신이 피해자인 살해 미스터리에서 산다는 말을 남기고 올 때처럼 홀연히 돌아간다. 그리고 곧바로 뒤어어 찾아온 여인은 자신의 이름이 마리아고 '포르투갈의 높은 산'의 투이젤루라는 마을에서 왔다고 소개하며 죽은 남편의 시신을 부검해 달라고 부탁한다. 진료기록도, 사망증명서도, 시신 인식표도 없는 남자의 시신을 부검해 달라고 하다니. 더 황당한 것은 시신을 부검하면서 남편 라파엘이 어떻게 '죽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지'를 밝혀달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드러나는 반전. 아내 마리아가 남편에게 전한 말은 상실의 무게에 짓눌린 그를 구하기 위한 위로였고, 에우제비우가 처음 본 마리아의 부탁을 들어줬던 것은 상실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이입이었을 것이다.  



투병 끝에 아내가 떠나고 아들마저 이혼하며 일상이 흔들린 상원 의원 피터는 지칠대로 지치고, 동료의 권유로 미국 오클라호마 주 의회 초청 방문단에 합류한 후 일정 마지막날 혼자 방문한 영장류 연구소에서 우연찮게 마주한 침팬지 오도와 교감한다. 피터는 의학계 아우슈비츠를 전전했던 오도를 데리고 캐나다로 이민 오기 전 부모님 고향이었던 '포르투갈의 높은 산' 투이젤루로 향한다. 피터는 때때로 찾아오는 외로움과 수시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오도에 대한 두려움을 확실하게 떨쳐내지 못한다. 그러나 온전한 교감과 그로인해 전해지는 위무는 피터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다독인다. 상실감이 인간에게만 있으랴. 얼마 후 오도 역시 그 상실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소설에서 재미있는 장치는 라틴문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다. 토마스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이 혼재된 듯한 어느 지역에서 길을 잃은 것이나, 라파엘의 시신에서 튀어나오는 엉뚱한 물건들, 남편의 시신을 관으로 삼아 봉합되어지는 장면 등 이외에도 몇몇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부분들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더 신비롭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신의 존재와 믿음, 종을 초월한 교감과 위로와 극복, 그리고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상 현상과 인간의 의지를 통해 죽음이 아닌 삶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결론을 들여다보자면 그들이 향한 곳은 모두 '집'이다. 그들이 각각 향한 집이 어디일지는 독자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다. 상실의 고통 속에서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것과 극복 중 어느 것이 더 쉬울까. 둘 다 쉽지 않다. 다만 질끈 감아버리는 것은 혼자 할 수 있지만, 극복은 혼자 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는 늘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 두 번째 읽는 이 아름다운 소설에 대한 나의 소감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