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슬픈 선행]
'좋은 사람들'이란 누구인가.
슬픈 선행, 슬픈 거짓말, 슬픔 사랑.
나쁜 짓은 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안 하면 그것되 죄. 부르주아들의 관대함은 올바른 삶, 올바른 사람, 올바른 세상에 대해서 증오를 가지기 때문에 생긴다. 계급 간의 가시 뿐만 아니라 같은 계급 내에서도 상호 경쟁의식은 가득하다.
멘토의 자의식은 착한 사람, 나르시시트, 영웅주의자, 치유주의자에서 나온다. 아도르노의 논리는 모든 것이 더럽고 모순투성이인 세상에서 예외는 없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치유주의자의 맹점은 상처의 아픔에는 예민하지만 상처가 왜 생겼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이는 감정의 소비로 변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소비주의자가 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소비를 하느냐는 질문에, 모든 소비가 타자가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이라 한다면 이 치유하는 사람들 또한 나르시스트이다. 본질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외면하며 봉합하려는 이기주의다. 아도르노는 이것을 시민적 차가움이라고 부른다. 즉 궁극적으로 자기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루고자 하는, 잘못된 리버럴리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자의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아는 자발적 자아가 아닌 타율적 자아(강요된 자아)이며 사회에서 생산된 자아들이다. 상처의 본질을 물어볼 떄에만 치유의 방법도 확연해진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우리가 아파하는 사람(약자)들에게 다가갈 때 어떤 겸손함을 갖는데 이 겸손함은 상대의 약점을 보았기 때문에 가능하고, 이는 이미 이 비교 의식이 우월감에서 온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상대의 약점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게 되면 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 그리서 우리는 약점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저자는 이기는 게 목적인 경쟁 사회에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도록 강요한다고 있다는 것이다.
- 나쁜 사람의 얼굴이 이 시대의 얼굴임을 잊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