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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심장을 쳐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나에게 아멜리 노통브의 첫 작품은 <적의 화장법>이다. 마지막장을 덮고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오후 네 시>를 비롯해 작가의 작품을 한 권 한 권 찾아 읽었더랬다. 인간 밑바닥에 깔려 있는 본능과 심리를 날카롭게 들춰내는 탁월함과 동시에 놓치지 않는 풍자와 해학까지 겸비한, 그것도 중편 혹은 경장편을 통해 압축적으로 풀어내는 능력은 현역 작가 중 손가락에 꼽지 않을까 싶다. 다만 몇 년 전에 나온 작품들에서 힘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은 있었으나 지금, 이 작품에서 그 날카로움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1972년, 자아가 강한 마리는 꿈꿨던 화려한 미래와는 너무 다른 세계에 정착한다. 스무살 나이에 한 남자의 아내이자 엄마가 됐다. 태어난 딸 디안은 더할나위 없이 사랑스럽고 예뻤으나 마리에게는 자신을 주저앉힌 존재를 넘어 주변의 모든 관심을 독차지한 경쟁자일 뿐이다.
이 소설은 '모성은 본능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충실히 따르고 있고, 출산을 전후로 삶의 주체가 달라지는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설 초반, 마리가 출산을 하기 전까지 마리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됐다면, 출산 이후에는 디안에게 옮겨진다. 예를들어 3인칭 화자가 마리의 부모님을 엄마, 아빠로 지칭했다면 디안이 태어난 순간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로 바뀐다.
여성이 출산을 하면 적어도 일정 기간동안 개인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엄마'라는 존재만 남는다. 그런데 마리는 좀 다르다. 어린 디안이 분석한 엄마 마리는 남자를 선호하며 질투에 있어서는 남녀차별이 없다. 과시하기를 좋아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에 있어 자식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딸에게 향하는 것에 극도의 질투를 느끼면서도 그 흔한 고민이나 죄책감조차 없다.
마리는 엄마이기 전에 한 개인으로서도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하나 뿐인 언니에게 자신의 행복을 과시하고 그녀의 소박한 삶을 경시하며 아이들 앞에서 타인에 대한 험담을 여과없이 쏟아내는 모습은 어른스럽지 못하다. 반면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만족하는 마리의 언니 브리지트는 동생의 행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진심으로 기뻐한다(정작 마리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지만).
영아기때부터 엄마와의 관계가 주종관계로 전락해버린 디안은 타인과의 관계에 부정적이며 무관심하다. 이러한 경험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두 번으로 이어진다. 절친 엘리자베스 덕분에 정서적 안정감을 찾아가나 싶었지만, 대학에서 만난 올리비아로 인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엄마와의 관계를 반복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그리고 올리비아의 딸을 통해 자신의 유년 시절을 투영하며, 마리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올리비아가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냉혈한이라면, 마리는 분별력이 없고 무지했던 것이다.
마리는 고작 대여섯살 된 딸이, 조부모의 집에 가서 살겠다고 해도, 부모 대신 키워준 조부모를 잃고 상심에 빠져 친구집에서 살겠다는 데도 그리 놀라워하지 않는다. 남보다도 못한 모녀 사이는 서로의 관계를 이해당사자가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소설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지만 마리의 극단적인 양육태도는 편애를 당하는 디안뿐만 아니라 편애를 받는 셀리아에게도 좋지 않다. 오히려 다른 의미에서 디안보다 셀리나가 더 딱한 지경이다. 어쨌든 디안은 마린의 그릇된 양육 방식에서 벗어났으니까. 세월 한참 흐른 뒤에도 마리는 자신이 디안에게 정서적 학대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을 각성해 본 적이 없는 그녀는 오래 전에 자신이 상처줬던 행동, 셀리아에게 퍼부었던 그릇된 애정에 대한 과오는 인지하지 못한다. 그녀는 채 어른이 되기 전에 어른의 자리에 놓여진 아이였다.
그렇다면 이 가정에서 디안의 아빠 올리비에는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그는 마리가 디안에게 쏟아내는 정서적 학대를 방조했다. 아빠의 의무를 저버렸고 아내를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남편의 입장에서 상황을 합리화했으며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이나 중재에 나서지 않았다. 딸이 열다섯 살에 공식적으로 집을 나가겠다는 선언에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고, 딸을 위한 최선이라는 말로 변명했다. 아빠 올리비에의 형식적인 애정은 오히려 디안을 죄책감에 들게 했을 뿐이다. 마치 딸이 부모를 버린 것 처럼. 그래놓고 딸이 이룬 성과에 대한 자긍심은 생물학적 부모라는 이유로 공유한다. 이러한 태도는 막내딸 셀리아에게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무책임의 극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세 남매와 올리비아의 딸 마리엘의 이야기는 이미 현실에서 차고 넘친다. 아이를 학대하고 방치하는 부모, 가족 구성원간의 폭력적인 갈등, 근친 살인 등의 범죄는 해를 거듭할수록 그 수치가 더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성이 본능이라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여겨야할까?
소설의 마지막은 충격적이지만, 문을 열어주는 디안에게서 우리는 희망을 볼 수 있다.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이 저절로 샘솟지 않는다. 부모든 형제든 연인이든 사랑은 노력이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공감하려는 노력,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과 연대감. 그것이 자신을 아끼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