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12월 19일 화요일
파이퍼 전투단은 스투몽을 공격해 장악했다. 버티다 결국 항복한 미군 병사의 규모는 참전했던 커트 보니것의 말에 의하면 '미군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항복(장병 8000명)'이었다고 한다. 미군에게 있어 이에 버금가는 재앙은 독일의 기갑사단에 의해 대량의 의료장비와 약악품 특히 모르핀을 내줬다는 것이다. 미군 병사들에게 있어서 부상은 곧 죽음이 되었다.
미군은 뫼즈강의 다리를 봉쇄해야만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교량을 막고 리에주 통과를 막아야 했다. 이에 아이젠하워는 몽고메리의 건의를 받아들여 뫼주의 지베부터 바스토뉴의 북쪽을 지나 독일 방어선 뒤의 프륌까지, 그리고 패튼의 제3군, 미들턴의 제8군단을 포함한 북쪽의 연합군 전부를 지휘할 권한을 맡긴다.
ㅡ 전투 중 벌어진 사상자를 제외하고 독일군은 민간인이든 적군이든 무자비하게 사살했고, 연합군은 재판의 과정을 거쳤다고는 하나 대부분 처형한 점을 생각해 보게 된다. 길어진 전쟁에 상대에 대한 증오만 커져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