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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예쁜 말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9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소설에는 세 소년이 등장한다. 존은 그를 낳고 얼마 후 집을 떠난 어머니 대신에 3년여를 보모의 손에서 양육됐다. 참전 후유증이 있는 아버지는 그의 마음을 알아주지만 가정 생활에서 큰 영향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존이 어머니에게 갖는 거리감은 호칭에서 드러나는데, 아버지 앞이 아니라면 그는 어머니를 그 여자 혹은 그녀라고 부른다. 존이 마음을 나누는 존재는 친구 롤린스와 말horse 뿐이다. 여행 도중 만난 블레빈스의 친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죽었고 어린 소년은 의붓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과 아동 노동에 시달리다가 집을 나왔다. 이렇듯 각자의 상처를 안고 있는 소년들은 말을 타고 정처없이 길을 달린다.
그들 특히 존은 특별한 계획도 없이 야영과 사냥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세상을 알아간다. 쫓기는 신세로 국경을 넘은 블레빈스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누더기 차림의 이민자 행렬, 가난하지만 소박하며 인정이 넘치는 가족, 적은 보수에 비해 힘든 노동을 하는 멕시코 노동자들, 초원의 바케로 등 집을 나오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 밖의 상황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여기까지라면 존의 가출이 낭만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은 성장기의 일탈 혹은 방황이라고 하기에는 그 대가와 상처가 지독하다.
존이 맞닥뜨린 어른의 세상은 모순투성이다. 앞뒤 사정없이 보여지는 결과로만 상황을 판단하고, 자칭 서장이라는 자는 돈을 받고 청부살인을 마다하지 않으며 공공연하게 출소를 대가로 돈을 요구한다. 감옥에 수년동안 갇혀있으면서도 자신이 왜 갇혀있는지조차 모르는 노인과 어린 나이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칼을 겨눠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게 만드는, 참혹한 가르침을 던지는 세상. 만들어지는 범죄, 부패와 폭력, 법으로 정의되지 않는 세상의 부조리를 알아가는 존에게 악한 인간은 없으며 처한 환경이 인간을 만들고, 악은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존재로서 부유하다가 악을 필요로하는 인간에게 찾아간다는 말이 얼마나 설득력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존을 감옥에 보낸 것도, 존의 목숨을 건진 것도, 이 모순과 부조리때문이었다.
존이 야생 망아지를 길들이고, 자신의 말과 교감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존은 야생 망아지를 길들일 때 귀엣말을 속삭이며 충분히 기다려준다. 존이 마주한 인간사회는 이와 정반대다. 대화나 설득보다는 권력을 이용한 강압과 폭력이 앞선다. 강한 자와 약한 자의 구도는 주인과 하인, 부자와 가난한 자, 남성과 여성, 간수와 죄수, 그리고 이방인 등 소설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구도에서 약자에 위치한 사람들은 '나쁜' 환경에 던져져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강요당한다. 존은 왜 블레빈스를 버리지 못했고, 위험을 무릎쓰며 잃어버린 말들을 되찾고자 했을까? 부조리 덩어리인 기성 세대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 아니었을지.

제목이 왜 <All the Pretty Horses> 일까? 말을 좋아하는 존은 멕시코 농장에서 야생 망아지를 길들이는 조련사 일을 하게 되는데, 생각해보면 인간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비롯한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는 각자에게 주어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고,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은 성장기에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과 교류하고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출생이 한 개인의 책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태생과 관습과 규범의 틀 안에 맞춰진 삶을 살아야하며, 그 틀에서 존재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여겨지거나 혹은 스스로 벗어나고자 하는 이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차별과 억압을 가하며 가치를 폄훼한다.
젊은 시절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억압을 경험한 노마님 알폰사는 스스로 사회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음을 인정하며 젊은 세대가 상처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 지난 세대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고 자아를 세워 타인의 시선에 초연할 수 있는 성장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삶에는 늘 위험이 존재한다. 가련하고 안타까운 죽음, 분노, 억울함, 상실감,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또다시 길 위에 선 존 그래디 콜은 처음 집을 나섰을 때의 그가 아닐 것이다. 집을 떠나기 직전 3인칭 단수로 불렸던 존이 문을 박차고 나온 이후부터 이름이 부여된 것처럼 어떤 삶을 살든 비로소 온전한 자신의 삶을 찾아갈 것이다.
앞으로 그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될까. 큰 위기를 겪은 후 살아 남았으나 삶에는 늘 위험이 존재한다. 가련하고 안타까운 죽음, 분노, 고통, 억울함, 상실감,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코맥 매카시는 판사의 입을 빌어 우리에게 말한다.
"내가 보기엔 자네는 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네. 이제는 그만 다 떨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야. (중략)"
